금년 대선의 주제를 오바마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하려는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는 가는 곳마다 유권자들에게 묻고 있다 : “여러분은 4년 전보다 살기가 좋아졌습니까?” 워싱턴포스트의 보수 블로거 제니퍼 루빈은 그보다는 이렇게 묻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러분은 캘리포니아처럼 되고 싶습니까?”
이번 주 초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적자에 허덕이는 주 재정 상태를 공개하며 이를 메울 수정예산안을 발표했다. 구석구석 삭감의 칼날을 휘두르며 저미고 깎아낸, LA타임스 사설의 표현대로 “피 흘리는 예산”이다.
1월만 해도 90억달러였던 예상 적자가 5월 현재 160억달러로 치솟았다는 것이다. 경기회복을 선언하는 브라운의 주정연설에서 장밋빛 낙관론이 넘쳐나던 때가 불과 4개월 전이다. 그 짧은 동안 적자가 70억 달러나 늘어난 셈인데 원인은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하다 : 수입이 예상만큼 들어오지 않았고 계획했던 지출삭감도 하지 못했다. 적자는 당연하다.
물론 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적자예산의 이면은 복잡하다. 왜 세수입은 예상만 못했으며 삭감시행은 불가능했는가에 대해서도 주지사는 14일 설명했다. 추가삭감의 필요성과 2차 추가삭감을 막기 위한 증세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캘리포니아 예산 위기’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적자증가, 민주당의 지출삭감 거부, 공화당의 세금인상 반대, 의회 표결, 교착상태, 거부권…헌법이 정한 기한 내 통과를 제대로 실현시킨 적이 드물어 매해 위기에서 위기로 곡예를 거듭해온 캘리포니아의 예산안 처리과정은 총체적 난국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지난해 처음 제때 통과라는 ‘과업’을 이루었다. 주의회 3분의 2가 아닌 과반수 찬성만으로 예산안 통과를 가능케 한 주민발의안 덕택이었다.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로 잠시 브레이크가 걸리긴 했었지만 민주당 주의회와 민주당 주지사는 어렵지 않게 합의를 이루어냈었다. 그러나 그 합의의 근거는 현실적 데이터가 아니었다. 불확실한 희망사항이었다. 그 결과가 이번 주 참담하게 드러났다. 당시 낙관적 예산에 포함된 40억달러 세수입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브라운은 자신들의 맹목적 낙관론 보다 경기회복 부진을 탓했다.
나머지 30억 달러 적자는 메디칼이나 간병인 서비스 등 삭감이 연방법원의 명령으로 집행중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160억달러 적자에 대한 브라운의 해결책은 누구나 아는 두 가지, 삭감과 증세다. 14일 주지사의 수정예산안 발표 이후 사회복지에서 공무원 임금, 법원 신축까지 주 행정 전반을 겨냥하는 83억 달러 삭감 칼바람에 대한 반발시위가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브라운의 진짜 목표는 11월 주민투표에 회부되는 세금인상안이다.
전 주민이 함께 부담해야할 판매세와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인상안이다. 판매세는 4년만, 소득세는 7년만 적용되는 한시적 인상이다. 현재 여론은 찬성 편에 기울어 있다. 3월 LA타임스 조사에선 64%가, 4월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C) 조사에선 54%가 지지를 표했다. 그러나 통과를 낙관하기는 힘들다. 특히 판매세 인상엔 반대 보이스가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힘든 소매업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새크라멘토에 대한 불신도 유권자의 지지를 망설이게 한다. 클레어몬트 맥케나대학의 잭 피트니 교수는 이렇게 비유한다 : “유권자들이 새크라멘토에 돈을 더 주는 것은 JP모건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주지사와 주의회 지도부는 이번 주부터 브라운의 수정예산안과 적자해소를 위한 대안들에 대한 타협을 계속할 것이다. 6월15일까지는 의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주지사 책상 위에 놓여야 한다. 이 법정기한을 넘기면 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지 의원들의 급여가 몰수된다.
앞으로 한 달도 채 안 남았는데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공화당의 협조는 아예 포기했다 해도 공무원 임금삭감엔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고 복지예산 삭감에 강력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해다툼으로 또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세수입 증가에 대한 비현실적 낙관으로 삭감을 유보하면 11월 증세안 통과는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제발 세금 좀 올리게 해주세요” 유권자의 증세안 통과에 목을 매는 주지사의 호소는 경고를 넘어 위협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증세안이 부결되면 55억 달러 공립교육 예산과 5억달러 UC 및 칼스테이트 예산이 추가 삭감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초중고교 수업일수가 또 단축되고 대학 등록금이 더 오를 것이다.
아이들 교육을 볼모로 잡고 세금 올릴래? 교육 망칠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듯한 협박성 호소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또 11월에 증세안이 통과된다 해도 예산위기는 내년에도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근본적 적자대책은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금인상 주민발의안에 ‘No’라고 반대표를 던질 용기는 없다. “피 흘리는 예산”이 과다출혈로 사망할까 두려워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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