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엔 조선족은 물론 북한을 탈출한 동포도 많이 살고 있다. 탈북자 중에 교수도, 목사도, 기자도, 사장도 나왔다. 하지만 탈북자로 위장하고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골수 빨갱이와 간첩들도 분명히 있다. 앞으로도 천안함 사건 같은 북한의 도발에 이들 ‘내부 적군’이 한 몫 할 수 있다. 남북통일까지 탈북동포를 모조리 수용소에 격리시켜야 한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사람들이 미친개 짖는 소리로 여길 것이다. 아마 진보좌파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올지 모른다. 탈북자 돕기 캠페인을 벌이는 자선단체들의 시선도 곱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신 나간 주장이 반세기도 훨씬 전에, 그것도 한국이 아니라 인권천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천연덕스럽게 실행됐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연방정부는 꼭 70년 전인 1942년 봄 전국의 일본계 주민들을 ‘적군 외국인’으로 낙인찍어 오지 수용소에 강제로 이주시켰다. 전 해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폭격하자 미국 군부는 일본이 본토 서부 주들도 잇달아 공격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럴 경우 이 지역의 일본계 주민들이 미국을 배반하고 일본 편을 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서부지역 사령관이었던 존 드위트 중장은 “왜놈은 왜놈(Jap’s A Jap)”이라며 “우리나라의 위험요소이므로 꼴도 보기 싫다. 미국 시민권자라고 해서 미국에 충성한다고 어떻게 보장하겠나? 아예 지도에서 싹 쓸어버리기 전에는 두고두고 우리 신경을 건드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계 주민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한 역사적 망언이다.
군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 9066호(1942년 2월 19일)에 따라 전국적으로 일본계 주민들의 강제수용을 시작했다. 말이 전국적이지 실제로는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등 태평양 연안 3주를 중심으로 일본계 남녀노소 11만여명이 캘리포니아와 아이다호 와이오밍, 유타, 애리조나 등 주로 내륙 사막지역에 설치된 10개 수용소에 끌려갔다.
놀랍게도 당시 수용대상자 중에는 한국계와 대만계도 포함됐다. 일본 식민지국가 출신들도 일본 국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일본인의 피가 ‘한 방울만’ 섞여도 수용대상이 됐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일반인들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일본계 시민권자 장병 5,000여명도 ‘4-C’(적군 외국인)로 분류돼 대부분 강제 전역됐다.
수용소는 ‘전시 이주촌’이라는 이름처럼 냉난방 시설도 없는 가건물이었다. 단칸방에 5~6명의 가족이 함께 기거했다. 부엌이 따로 없고 화장실, 목욕탕, 세탁장 등 시설은 250여명 당 한 개꼴이었다. 하루 1인당 급식비가 45센트였고, 교도소처럼 카페테리아에서 일제히 함께 식사했다. 주 44시간 일하고 월급으로 평균 16달러를 받았다. 영락없는 죄수였다.
강제수용이 3년 뒤인 1945년 말까지 이어지는 동안 두 차례 인권침해 소송이 제기됐지만 연방대법원은 한결 같이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인구조사국이 센서스 자료를 악용해 일본계 주민색출을 은밀히 도왔다는 의혹이 2007년에야 사실로 확인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8년 일본계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성명을 발표하고도 거의 20년이 지난 뒤였다.
요즘 시애틀을 비롯한 미국 각지에서 일본계 주민 강제수용 70주년 행사가 이어지며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역시 되풀이 된다. 9·11사태 직후에도 워싱턴 정가 일각에서 아랍계 미국인들과 회교도들을 모두 집단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인(백인)들 피 속에 흐르는 인종차별 유전자는 못 말리는 모양이다.
한인은 운 좋게도 일본인의 수용이나 중국인의 ‘황화’ 같은 학대를 당하지 않았지만 배울 게 있다. 똑같이 2차 대전 적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계는 무사했고 동양계인 일본인들만 수용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간첩으로 체포된 일본계 주민이 한명도 없었고 일본인 2~3세 2만3,000여명(당시 전체 일본계 인구 30만)이 미군에 입대해 싸웠다는 사실이다.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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