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기위해 이라크에 진격했던 지난 2003년 당시, 기자는 사회부 종군기자로 중동 지역을 취재했었다.
당시 기자가 중동지역에 갖고 갔었던 전화기가 노키아가 제작한 특수 위성전화기였다. 외관상으로는 미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던 일반 노키아 휴대폰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전화기는 LA에서 사용하는 213 지역번호를 사용하면서 중동 어느 국가에서도 간단하게 미국과 통화가 가능했던, 당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군림했던 노키아의 기술과 자존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첨단 제품이었다.
노키아는 인구가 530만명에 불과한 소국 핀란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핀란드의 자존심이다. 1992년 ‘노키아 1011’을 출시한 이후 1998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이나 휴대폰 업계에서 세계 1위의 절대 지존으로 군림했다. 2007년에는 핀란드 사상 최대인 12억유로의 세금을 납부했고 2008년에는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40%로 수위에 올랐다.
그러나 노키아는 2010년부터 빠르게 휴대폰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 스마트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노키아의 지난해 납부세금은 최고 시절의 600분의 1 수준인 200만유로로 줄었다.
급기야 지난달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노키아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인 ‘BB+’로 하향조정했다. 올해 1분기에만 12억달러 순손실을 기록한 노키아는 전체 직원의 20%에 육박하는 1만8,000명 직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한번 기울기 시작한 노키아의 회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 블랙배리를 출시했고 ‘오바마폰’으로 히트를 쳤던 캐나다의 림(RIM) 역시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지난해 말 전체 직원의 10%가 넘는 2,000명의 감원 계획을 밝히는 등 긴축경영에 착수한 상태다.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부상은 다른 전자업계에도 메가톤급 폭풍의 눈으로 작용하고 있다. 123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간판 기업인 게임기 제조업체 ‘닌텐도’는 1962년 상장 이후 50년만인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처음으로 순손실(423억엔)을 기록했다. 스마트폰으로 무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전통적인 게임기기와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가 급감한 것이 주요 요인이다.
반면 고만고만한 컴퓨터 제조업체였던 애플은 아이폰 판매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6,000억달러에 육박하는 초우량 공룡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할 당시 주가(4달러대)에 비해 지금 주가는 150배나 올라 있다. 투자은행인 파이퍼 제프리는 최근 애플의 주가가 2004년에 1,000달러를 넘어서면서 시가총액도 1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애플 주가의 상승 여력이 아직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IT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이미 이익의 90% 이상을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에서 내고 있고 TV 사업 진출을 꽤하고 있다. 페이스북도 절반 정도의 이용자들이 모바일 기기로 접속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휴대폰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온라인 다운로드 등 ‘디지털 혁명’이 불어 닥치면서 코닥, 블록버스터 등도 파산을 신청했다. 한인사회만 해도 한때 한인들의 주력 업종 중 하나였던 비디오 대여점들이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고 필름 카메라 현상소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다국적 석유회사인 로열 더치 쉘 그룹의 아리 호이스 기획실장은 최근 펴낸 ‘살아있는 기업, 100년의 기업’이라는 책을 통해 장수 기업들의 비결을 환경에 대한 민감성, 강한 정체성과 결속력, 관대함, 보수적 자금조달이라는 4가지 핵심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기업들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하고 이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수기업들은 여분의 현금을 비축해두는 보수적인 자금조달로 기업의 독자성과 경쟁자들이 갖지 못한 옵션을 확보할 수 있다.
꾸준한 변화와 혁신 없이 기존 질서와 패러다임에 안주하다가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도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노키아와 닌텐도, RIM, 코닥 등의 기업들이 증명하고 있다.
<조환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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