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적이란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져버린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그려보려 했다. 어느 별에서 살다, 장미꽃의 투정에 마음이 상해 지구에 온 어린왕자. 그는 여우를 만나, 잘 보려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지구를 떠난다는 등의 내용이다.
어린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갖고 있다. 시냇가에 나가 물장구치며 놀던 어린 시절. 나무총과 칼을 만들어 편을 갈라 군대놀이하던 어린 시절. 진달래 피던 봄, 앞산에 올라 진달래꽃 따 먹으며 산을 누비고 다니던 어린 시절 등등. 그 때만해도 마음은 동심으로 가득 차 무서움을 몰랐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그 동심은 너무도 순수한 마음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흰 눈처럼, 하얀 백지처럼, 깊은 산 속 개울물처럼, 먹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곱고 환한 순수 그 자체의 마음이 바로 동심의 세계이다. 이렇게 하얗고 맑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누가 가져가는가. 아니면 빼앗겨 버리는가. 자신인가? 세상인가?
성서(마18:1-10)에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기독교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 영생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악한 어른의 모습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내용이다. 계산적이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사람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소파 방정환선생은 ‘어린이 찬미’란 글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의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주는 사람이 있다 함은 그 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이요 그 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라고. 어린이만을 위해 살다 짧은 생(32세·과로사)을 마친 그는 어린이날을 만들어 지금까지 지켜오게 하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마음의 고향이다. 어른이 되어 살며 찌들고 더렵혀져 주글주글 늙어진 마음이 그래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어릴 때 동심이다. 그 동심은 순수하다. 세상이 이런 순수한 마음에 고춧가루 뿌리고 재를 뿌려 순백 같은 마음의 색갈이 얼룩으로 번져 있다. 찌들어진 어른들의 마음. 어떻게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린이는 꿈을 가진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꾸는 꿈은 어린왕자의 꿈처럼 아름답고 소박하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모두를 무지개의 빛으로 본다.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들 중에는 어른 못지않게 마음이 더럽혀져 있는 아이들도 본다. 그들을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나. 세상과 어른들의 욕심이 그렇게 만든다. 어린이는 미래 세상의 주인공이 될 사람들이다. 아니, 이 지구와 우주의 주인이 될 인물들이다. 금방 솟아난 순과 작은 가지들은 보호받고 무럭무럭 자라나며 뿌리도 깊이 뻗도록 해야 하듯, 햇빛을 한껏 받으며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를 듬뿍 머금어야 한다. 어린이도 그래야 한다. 우리
와 세상의 미래가 어린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동심으로 돌아갈 길은 없을까. 어린왕자에 나오듯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또 물질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삶을 살면 어떨까. 예수의 말처럼 어린아이 같이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들의 얼굴에 슬픔을 주지 않는 어른들과 세상이 되라는 방정환선생의 말이 세상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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