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 짐 월리스의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부정을 지적하며 그 안에 신적 정의(특히 경제적인 면에서)가 실현될 것을 기대한다. 그 책에 이런 장면이 하나 나온다.
요즘 잭(저자의 아들)이 빛나는 순간은 기도할 때다. 언제나처럼 먼저 엄마와 아빠, 형, 사촌들, 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런 다음 두 아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잭은 덧붙인다. “그리고 하나님,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 집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무슨 하실 말씀이나 질문 없으세요?… 아멘.”
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기도’라는 행위를 끼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 기도는 거의 내 삶의 일부인 셈인데, 글의 이 대목을 접하는 순간 내 기도생활과 관련하여 등골에 얼음을 끼얹는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해본 적이 있었나? “하나님 혹시 하실 말씀은 없으세요. 질문은 없으세요?”
기도는 흔히 영적인 호흡이요 대화라고 정의된다.
먼저 호흡은 생명을 유지해주는 원천이다.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중요한 생체 방식이다. 호흡 없이 생명은 존재하지도 못하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호흡은 또한 공기의 산소와 내 체내의 호흡기관이 서로 나누는 대화이다. 그래서 호흡에는 들숨과 날숨이 있다. 숨을 들어 쉬어 그것의 산소를 빨아들이고, 숨을 내 쉬어 체내의 불필요한 공기를 뿜어낸다. 그런데 호흡한다면서 공기의 모든 산소가 내 것이라도 되는 양 계속 들숨만 들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비유에서 기도도 영적인 호흡이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기도는 흔히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집어넣는 영적 사건인 것으로 오해되곤 한다. 하나님의 의중에 맞춰 내 삶을 조절해보려는 시도가 신앙의 길이라고 한다면, 신앙의 길에서 가장 원시적인 방식인 기도에서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사실은 잘 그렇지 못하다. 내 기도도 들숨과 날숨을 공유해야만 좋은 기도가 된다.
그 다음으로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는 혼자 할 수 없다. 대화란 쌍무적인 언어 사건이다. 말할 상대가 있고 듣는 상대가 있어야 이뤄지는 일이다. 말한 자가 듣고, 듣고 있던 자가 다시 말하고, 이런 ‘서로 간’의 일이 대화인 것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힌 주인공은 배구공에다 얼굴을 그려놓고 그와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게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대화란 나 혼자의 일이 아닌 서로의 일이다.
기도가 영적인 대화라면 이 기도 사건 역시 쌍무적이며 호혜적인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그 ‘께’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도를 나의 뜻을 그분께 전달하는 일방적인 일로만 간주했을 때 생기는 오해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소년이 했던 질문은 무척 명쾌하다. “하나님 생각은 어떠세요? 혹시 질문은 없으세요?”
기도의 책인 구약성경 시편에서도 그렇다. 시인(들)은 비교적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편이었다. 하나님 뜻대로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사람들의 비난, 잘 풀리지 않는 일들, 육체적인 아픔, 그리고 정신적인 고뇌 등, 그들은 사면초가적인 상황을 많이 겪었다. 그때 시인들은 하나님께 묻곤 했다. “하나님 생각은 어떠세요? 혹시 질문 없으세요?”
신앙적으로 잘 살아보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신앙적으로 산다고 해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잘 살아보려는데 삶의 방해꾼들은 어김없이 나타나 오히려 나를 더 흔들어 댄다. 그때 이렇게 기도하기 바란다. “하나님 생각은 어떠세요? 혹시 질문은 없으세요?” 당장 답이 안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꼭 답해주실 것이니까. 그리고 기도는 일방적인 일이 아니라 쌍무적인 사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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