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 페일린을 기억하라” - 요즘 한창 부통령 후보감을 물색 중인 미트 롬니 진영의 인선 수칙 중 하나일 것이다.
4년 전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강행했다. 그해 8월말 공화전당대회를 닷새 앞두고 러닝메이트로 결정된 새라 페일린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깜짝 인선이었다. 고령의 매케인에겐 40대 변화의 기수 오바마 열풍에 맞설 드라마틱한 극약처방이 필요하기도 했고, 중도파인 자신에게 냉담한 보수진영의 압력에 양보해야 할 입장이기도 했다.
극우보수 성향의 초선 알래스카 주지사 페일린은 불과 며칠의 대충 검증을 거쳐 ‘부통령 후보’로 데뷔했다. 그러나 매력적인 뉴페이스 페일린의 인기 돌풍이 매케인의 악몽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 이어 금융위기가 터지고 확고한 리더십에 목말라하는 국민들에게 경제에서 외교까지 국정의 기초 소양도 갖추지 못한 페일린의 바닥은 단 몇 번의 인터뷰로 여지없이 드러났다.
물론 대선패배가 페일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매케인 진영은 ‘페일린 구하기’에 아까운 시간과 인력을 상당부분 낭비해야 했다.
어제 뉴트 깅리치까지 중도하차를 선언했으니 2012년 공화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앞으로 남은 ‘흥미로운’ 이벤트라야 부통령 후보선정 정도다. 선정작업 착수가 공식발표된 것은 2주 전이지만 롬니 자신이 주관하는 ‘비공식’ 검증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3월엔 폴 라이언 연방하원 예산위원장과 위스컨신에서, 4월엔 마르코 루비오 연방상원의원과 플로리다에서, 이번 주 초엔 켈리 아요티 연방상원의원과 뉴햄프셔에서 각각 동반 캠페인을 펼쳐 왔다. 오늘은 밥 맥도넬 버지니아 주지사와 동행 일정이 잡혀있다. ‘부통령 감’으로서의 능력과 충성도를 측정하고 코드를 맞춰보는 일종의 면접이기도 하고 출신지역 표밭과 미디어의 반응을 분석하기도 하는 ‘공개 오디션’인 셈이다.
대통령선거에서 부통령후보를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러닝메이트 선정은 대통령 후보의 판단력과 통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첫 번째 테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선정기준에 대한 정답은 득표력과 국정 능력이다.
부통령 후보를 고르는 첫 번째 요건은 당선에 도움이 될 사람이다. 대통령 후보의 약점을 보완해주고 흥행성을 높여줄 후보, 접전지에서 표를 몰아올 그 지역 출신 인기 정치인이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역대 부통령 후보들의 득표력은 별로 신통치 못했다. 출신지역에서 패배한 경우도 허다했다. 실제로 득표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경우는 1960년 존 F. 케네디의 러닝메이트로 보수적인 텍사스와 남부의 표를 민주당으로 몰고 온 린든 존슨 정도였다.
국가적 측면에서 보면 득표력보다 중요한 것은 예비 대통령으로서의 능력이다. 2008년 많은 중도파 유권자들을 전율케 한 것은 “새라 페일린 대통령?”, 이 한마디였다. 부통령이 누구인가. 2차 대전의 와중에서 루즈벨트의 사망으로 전시의 통수권자가 된 해리 트루먼, 케네디 암살로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던 존슨,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평소엔 그림자처럼 잘 보이지도 않다가 비상시엔 그가 바로 대통령이다.
신중하고 체계적인 롬니가 ‘게임 체인지’를 위해 ‘깜짝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은 낮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안전한 보수’를 택할 것이라는 예상을 근거로 넘쳐나는 미디어의 추측과 분석 속에 유력 후보군에 대한 1차 평가는 이미 나와 있다 :
쿠바계 이민2세 루비오는 라틴계와 플로리다 득표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40세 초선의원의 ‘경험부족’엔 위험이 따른다, ‘공화당의 떠오르는 별’ 라이언은 보수진영의 총아이지만 메디케어 대폭개혁을 포함한 그의 예산안이 표밭에서 직면할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 수퍼스타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공화당 지도부도 열광하지만 누구의 넘버 2가 되기엔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CNN 여론조사에서 26% 지지로 1위에 오른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본인자신이 정계복귀 자체에 관심이 없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장담하는 인물이 롭 포트먼 연방상원의원인 것은 흥미롭다. CNN조사 지지도가 0.5%로 최하위권인 무명의 후보다. “잘 생겼으나 배우정도는 아니고, 호감은 주지만 매력적은 아닌, 매너좋은 보수적 신사”라고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도일 맥마누스가 묘사한 포트먼은 7선 연방하원의원, 미 무역대표부 대표 등을 역임한 경제통이며 그의 텃밭이 공화당 대선 승리에 필수지역인 오하이오다. 롬니와 그중 닮은 ‘밋밋하고’ 부유한 백인 변호사 출신이지만 토론의 달인 조셉 바이든 부통령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국정 능력은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다…
아무리 지금 추측이 무성해도 후보가 결정되는 것은 8월말 전당대회 무렵이다. 여름을 지나면서 인선 요인이 바뀔 수도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와 경제상황이 달라지면 부통령 후보선정을 비롯한 양당의 기류도 소용돌이 칠 것이다. 지금 47% 대 44%로 오바마를 뒤쫓고 있는 롬니가 훌쩍 앞설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그렇게 되면 다급해진 민주당에 ‘게임 체인지’의 필요성이 절박해질 것이고, 지금 루머로 떠도는 부통령 교체설이 현실화되지 말란 법도 없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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