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타워
세계제일 약소국 바티칸 왕국 박물관
범접할 수 없는 위엄.경건함에 말문 막혀
미켈란젤로 재설계로 11년 걸려 세운 베드로성당
세계 제일 큰 성당다운 위용에 압도
두세 시간 기다림은 기본인데, 1시간 만에 세계제일약소국가인, 13만평의 바티칸 왕국에 진입했다. 드디어 입장한 박물관은 말없음표다. 그림들이 내뿜는 장엄하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경건함에 자못 긴장된다. 얼마나 관람객들이 지나다녔는지, 통로의 대리석 모자이크바닥 가운데가 쑤욱 들어갔다.
베드로 동상 앞은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다. 속설대로, 동상의 발을 만져서 소원성취 해보려는 사람들의 등쌀에 발만 하얗게 닳고 빤질빤질하다. 베드로님이 허구한 날 시달리느라 조용히 쉬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기어이 슬쩍 만져보고 지나쳤다. 나도 참 어지간하다.
천장에 그려진 ‘시스티나 소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를 보는데 “우와!”소리만 나온다. 하나님의 창조와 노아의 이야기를 정 중앙에 4년에 걸려서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다. 쳐다보는 것만도 고개가 뻐근한데 미켈란젤로는 도시 그 높은 천장에 틈 하나 없이 어찌 저렇게 세밀하게 그렸을까? 결국 그는 발판위에 누워 작업하느라 관절염, 근육경련에 시달렸고 천장에서 떨
어지는 물감 안료로 인해 눈병까지 얻었단다. 그런 각고의 심혈 끝에 탄생된 천장화이기에, 수송 불가능이기에, 모나리자처럼 타국살이 설움은 안 겪는다. 노고의 대가론 엄청난 열매요, 이태리로선 천우신조임에 틀림없다.
이참에 고백할 게 있다. 얼마나 무식했던지, 천사들에 떠받혀 하늘로 부상하는 하느님이, 손으로 땅 위의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그림<두 사람의 검지가 서로 맞닿은 그 유명한 손가락 그림>이 독립된 그림인줄로 알았다. 그런데 천장화의 부분 중에서 ‘이브의 창조’아래 ‘아담의 창조’란 그림의 일부였던 것이다. E.T란 영화도 이 ‘아담의 창조’에서 힌트를 얻어, E.T가 검지로 찌르르 파워를 주입하는 장면이 탄생됐단다.
테베레 강을 건너 도착한 곳이 ‘콜로세움’이다. 원이름은 ‘폴라비우스 원형극장’인데 이태리말로 ‘거대하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3대 건축양식인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양식이 배합된 걸출한 건축물이다. 콜로세움만으로도 로마의 가치는 증명된다더니 맞다. 허물어지다만 담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대포나 총탄 맞은 자국인 줄 알고 물으니, 한때 철거하려고 부술 때 벽에 박혀있던 철 구조물을 뺀 자국이란다. 그럼 불가피한 재해의 소산이 아니라, 인위적인 철거중단모습?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멋질까. 인간들의 우매한 소치가 딱하기 한량없다. 아니 어쩌면 완전 붕괴를 면하고 저나마 부지돼 더 유명한 건가?
옆에 개선문은 유적치곤 제법 말짱하다했더니, 기독교를 처음 공인한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부조의 상당부분을 다른 건축물에서 뜯어다 붙였단다. 세계의 개선문들이 다 이걸 본 따 만들었다지만, 파리 개선문에 비하면 원조 값을 전혀 못하고 있다. 나중 된 자가 크게 된 셈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비유와 같겠다.
다음 방문지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이다. 나는 영화를 보곤 교외의 으스스한 동굴 벽에 있는 줄로 알았다. 시내에, ‘산타마리아 델 성당’문 앞 조그만 공간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벽에다 하수도뚜껑 같은 동그란 돌 판을 붙였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하여간에 영화란 게 사람들한테 무한한 환상과 착각을 주지만, 예상외의 ‘실망스러운 진실’이다. 관광지는 실제의 가치보다 가공된 이미지로 여행객을 끈다는 실증이다. 어이됐건 당시의 하수도뚜껑이라거나 건축물자재의 일부였다지만, 대리석에다 왼쪽 눈이 세로로 찢어진 강의 신 홀르비오 얼굴을 새긴 원형 판이란 것이 정설이다. 그나저나 돌 판은 거짓말 테스트기 노릇을 하느라 사람들의 손때로 코와 눈이 반지르르 하다. 거짓말쟁인지 알아보려는 수많은 손들이 들락거려 입 주변은 수염자국인양 거무스레하다.
어쨌건 로마에 왔으니 햅번이 간 곳은 필히 답사한다며 간 곳이 트레비분수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행운의 분수는 ‘삼거리’란 이름 뜻대로 세 길이모인 조그만 공간, 고풍스런 건물 앞에 있었다. 툭 트인 광장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협소하다. 분수엔 역동적으로 격렬하게 달려가는 말들과 사람들의 조각이 있는데, 맑고 새파란 물로 끊임없이 샤워해 그런지 생생하다. 둘러선 ‘인의 장막’들 때문에 먼발치서 구경하기도 수월치 않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행운의 동전을 안 던지면 두고두고 후회감이다.
인파속을 용감하게 헤치며 계단을 내려갔다. 분수 언저리 턱엔 이미 무명의 사진모델들로 팔 하나 들이밀 틈도 없다. 좀 기다려 자리가 나기에 얼른 비집고 앉아 동전을 던졌다. 한개 던지면 1년 안에 로마재방문이요, 두개 던지면 사랑이나 소망이 이루어지고, 세 개 던지면 현재의 연인이나 부부가 헤어진다나. 세 번째 조항은 결별과 이혼이 흔해진 세태의 풍조반영으로 첨가됐겠지 싶다. 분수를 등지고 앉아 오른 손으로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 뒤로 던진다는 식대로 힘껏 던졌다. 너도나도 그런 식으로 던진 동전이 연 3000억 이라나. 이 분수야말로 둘도 없는 애국자다.
영화 ‘벤허’의 촬영장이었다는 ‘대전차경기장’을 보러갔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물이 말라 잡초만 무성한 샛강 같다. 당연히 폐허려니 했지만 그래도 허무하다. 그 시대에 25만 명 수용경기장이었다면 대단한 규모였을 텐데. 영화에서처럼 전차들이 질주하고 사람들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무심하게도 행사예행연습중인 헬리콥터만 몇 대 서있을 뿐 너무 적막하다. 역시 ‘영화는 영화다’일 뿐이지만 어쩐지 속은 기분이다.
길바닥까지 유물이고 유적지인, 경기장 뒤의 궁전 터를 돌아봤다. 철저하게 무너진 ‘황성옛터’다. 웅대했을 원주조차 온전한 게 하나도 없고 크고 납작한 주춧돌들만 덩그러니 있다. 들풀들만 새파랗게 극성이다. 이 근처 어딘가에 시저의 무덤이 있을 거라니, 더 허망하다. 그가 누구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말했다는 당대의 최고명장이 아닌가. 그 시저가 무덤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국립박물관과 통일기념관이라는 하얀 대리석건물이 석양을 뒤로한 채 우뚝 존재감을 나타낸다. 옥상양쪽에 말 네 마리와 마차, 날개달린 천사상은 너무 유명하다. 그 기마상이 어찌나 리얼한지 방금 하늘에서 하강해 땅까지 사뿐히 착지할 것 같다. 로마가 무대인 무수한 영화마다 이 건물이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다.
해저물녘에야 로마의 마지막 관광코스로 베드로의 유골함이 있다는 베드로성당에 도착했다. 미켈란젤로의 재설계로 11년이나 걸렸다는, 세계 제일 큰 성당다운 거한 위용이다. 원주위에 돔 앞 중앙엔 십자가를 안은 예수 상과, 좌우엔 6m높이의 11제자들의 조각상이다. 회랑 위 지붕난간아래엔 120년 동안 공사한, 키가 3.24m인 142명의 가톨릭 순교자와 성인들의 대리석동상이 석양을 등지고 늠름한 듯 서있다. 성경말씀을 칼처럼 지키라는 순교의 의미 반영이라지만, 서있는 게 무척 고달파만 보인다. 떨어질까 조마조마 위기감이 들어 선가.
역시 짐 검사 후에 입장했다. 바닥의 대리석무늬까지 예술적이다.
중앙 돔에 돌아가며 나있는 창을 통한 자연채광과, 푸른 색 이미지인 돔 안의 천장화와 벽화가 천국세계를 보여준다. 벽에 타피스리 ‘양탄자’로 직조한 그림이 있다. 인물들의 눈동자와 입, 표정들이 하도 살아있는 듯 세밀해, 붓으로 그린 그림으로 속을 뻔했다. 열쇠를 들고 의자에 앉은 베드로 청동상은, 중세부터 순례자들의 입맞춤과 손길로 오른발가락은 닳아 원형이 거의 사라졌고, 왼쪽 발가락마저 많이 닳았다. 희생정신의 표본이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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