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향 디즈니홀 연주회 결산
▶ “이렇게 많은 한인 청중 처음” 정명훈 감독 앙코르 2곡 선사 “문화예술계에 후원을” 호소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이렇게 높아졌다니, 세계수준이라 해도 손색없는 훌륭한 연주회였습니다”
지난 19일 서울시향 연주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한국 교향악단이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에 견줄 만한 실력이 됐다는 것이 모두들 너무나 기쁘고 흥분된 표정이었다. 실제로 디즈니홀 무대에 서는 어떤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 시향이 이 정도 수준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도 그랬지만 정명훈 예술감독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감격도 컸던 것 같다. 아무래도 북미 투어의 가장 중요한 무대인데다 마지막 공연이다 보니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느라 흥분된 모습이었고, 첫 곡(드뷔시 ‘바다’) 몇 군데에서는 다소 어수선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 감독의 노련한 지휘는 오케스트라를 날카롭게 통제하며 점진적으로 에너지가 고양되는 연주로 이끌어갔고, 마지막 차이코프스키 ‘비창’은 대단히 수려하고 감정 충만한 연주로 막을 내렸다. 쏟아지는 ‘브라보’와 기립박수에 앙코르를 두 곡(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이나 들려주었는데 그래도 청중들의 박수갈채는 멈출 줄을 몰랐고, 단원들이 퇴장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자리를 뜨는 모습이었다.
밴쿠버와 시애틀, 샌타바바라에서도 모두 전석 매진에 기립박수를 받고 현지의 좋은 평도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특히 시애틀은 정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곳이다. 50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 6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던 곳인데 그때 이후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니 감회가 무척 컸을 것이다.
정 감독은 연주를 마친 후 본보 주최의 리셉션에 참석, “30년 전 내가 LA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있을 때 지휘를 무척 많이 했다. 3년 동안 할리웃보울을 포함해 100번도 넘게 지휘했는데 한국 사람은 전부 다 합해서 100명도 못 본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디즈니 홀을 가득 메운 한인 청중을 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두 번의 유럽 투어와 첫 북미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 정명훈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향에 대한 전폭적인 후원이다. 지난해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과 5년 음반계약을 맺는 등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고 자부하지만 다른 나라 유수 오케스트라들과는 달리 서포트 시스템이 형편없이 취약한 한국의 현실과 한계를 정 감독은 통감하고 있는 듯했다. 정 감독은 연주 전 가졌던 전화 인터뷰에서도, 연주회 당일 오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도, 연주 후 열린 리셉션에서도 한결같이 해외 한인들의 후원을 호소했다.
“50년이나 해외에 살면서 어떻게든 한국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6년 전 서울시향을 세계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받았고 그래서 시작했지요. 사실은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나왔지만 오케스트라 수준은 형편없었거든요. 하지만 처음엔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았는데 기대보다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서울시향은 정명훈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전 단원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 완전히 새롭게 구성한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보았듯 오케스트라 전체가 젊은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정 감독은 “한국은 지금 굉장히 많이 발전해 어딜 가나 잘 사는 나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문화예술의 발전이 뒤따라야 하죠.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하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서울시향이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오케스트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부탁했다.
■ 독일서 활약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
“시향과 작업 너무 즐거워”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은 LA 공연에서만 그의 작품 ‘생황협주곡’이 연주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공연까지 동행하며 서울시향에 대한 전폭적인 애정과 지지를 보여주었다.
공연 당일 기자회견에도 정명훈 예술감독과 함께 참석한 진은숙은 “LA 공연이 가장 중요한 연주이고, LA 필하모닉 사람들과 잘 알고 친하게 지내 인사도 할 겸 함께 왔다”고 말하고 이번 북미 투어에 대해 “가는 곳마다 콘서트가 매진되고 청중들이 다 기립박수하는 등 연주가 아주 좋았다”고 전했다.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상임작곡가이며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한국과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진은숙은 “미국서 오래 살아서 모국의 음악에 기여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하게 돼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다”면서 “시향의 수준은 내 곡을 연주하는 것만 봐도 매번 달라질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구스타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 취임 후 첫 콘서트에서 가졌던 생황협주곡 미국 초연에 대해 “두다멜은 현대음악을 많이 안 한 사람이라 어떨까 했는데, 기본적으로 스마트하고 음악을 이해하는 감각과 본능이 뛰어난 사람이라 연주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진은숙의 곡은 오는 5월9~26일 콜번 스쿨에서 개최되는 제1회 LA 국제 뉴뮤직 페스티벌에서도 초기 대표작 ‘문자 퍼즐’과 세계 초연되는 ‘코스미기믹스’ 2곡이 연주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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