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6일 사천성 청두의 미국 영사관. 변장을 한 중국의 한 고위관리가 뛰어들었다. 그의 이름은 왕리쥔. 현대판 포청천으로 중국 대중의 추앙을 받던 인물이다. 주군(主君)으로 모시던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의 개인비리와 기밀문서를 지니고 황급히 도망을 친 것이다.
이후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중국권부의 최상층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유력 후보였다. 그 보시라이가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의 부인은 살인혐의로 체포되고 미국에 유학중인 아들의 화려한 사생활도 까발려진다.
몰락도 그런 몰락이 없다. 카리스마의 지도자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었다. 그 보시라이가 부패의 화신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재클린으로 불렸던 그의 부인 구카라이는 하루아침 피와 권력에 굶주린 마녀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중국의 관영언론에 따르면 그런 모습이다.
동시에 난무하는 것이 온갖 설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전례 없는 암투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현 권력층 간의 사활이 걸린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군부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등등.
‘왕리쥔 미국 망명기도’에서부터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 보시라이사태는 천안문 사태이후 최악의 정치스캔들로 비화되면서 중국의 국내정정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그 사태가 알려주는 또 다른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애국심을 고창한다. 그런 중국의 최고위 지도층들이 뒤로는 비자금을 빼돌리고 자녀를 외국의 비싼 사립대학에 유학시키고 있다. 보시라이사태는 현 중국 공산체제의 취약성을 알려주고 있다.” 민신 페이의 지적이다.
작은 반정부 움직임에도 극히 민감하다. 정보혁명에 대해서는 알레르기성 거부반응을 보인다. 왜 중국의 집권공산당은 이 같이 편집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그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탄력이 있고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부는 썩을 대로 썩어 기능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 공산당 통치 시스템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중국의 경제는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반면 정치는 과거에 갇혀있다.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보시라이사태에 대한 윌리엄 페섹의 진단이다.
이집트도, 미얀마도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의 정치는 그러나 여전히 모택동, 스탈린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뒷거래와 숙청으로 대변되는 밀실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음습한 정치문화와 인터넷 문화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그 괴리에 있는 것이 오늘의 중국이라는 지적이다.
엘리트와 빈곤한 대중 간에 놓여 있는 거대한 갭, 다시 말해 1%의 가진 자와 99%의 못 가진 자의 구도에서도 그 괴리는 찾아진다. 1%가 경제적 부는 물론이고 정치권력까지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최고 부유층 대표위원 70명의 재산은 슬로바키아의 국내총생산을 웃돈다. 900억 달러라는 돈이 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보시라이사태는 공산당이 왜 중국을 통치해야하는지 그 레지티머시(legitimacy)에 심각한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옵저버지의 지적이다.
공산혁명을 이끌었다. 평등사회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약속 하에 얻어진 통치의 레지티머시다.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수에게만 그 과실이 돌아갔다. 사회주의니, 평등사회 낙원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혁명지도자들이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태자당’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치외법권적 존재다. 제멋대로 돈을 빼돌리고 고문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들이기에 하는 이야기다.
공정한 법이란 아예 없다. 견제와 균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보시라이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아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드러난 전반적인 공산당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문제는 지방의 썩은 관료들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그래도 인민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지 않은 중국 인민이 품고 있는 소박한 기대마저 무너뜨렸다. 새삼 발견되고 있는 것은 공산당 지도자들이 혁명 대상이었던 왕조시대 관리들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공산당 통치의 레지티머시를 되찾을 수 있을까. 1%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1당 독재체제에서 그 해결의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방법은 1%가 독점하고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다. 그들은 반대로 더 움켜쥐려 들고 있다. 그 1% 계층끼리 치열한 권력투쟁까지 벌이면서.
예상되는 결과는 그러면 무엇일까. “중국의 정치사를 보아도 그렇고 다른 나라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형 체제가 지도층 간에 심각한 분열상을 보일 때 그 체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체제의 가장 위험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민신 페이의 말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경착륙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로 ‘북경의 봄’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2012년이 그 시작인지, 혹은 2013년이 될지 그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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