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든 동물과 같이 먹어야 사는 존재다.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이래 수많은 사회와 정치 체제가 등장했다 사라졌지만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가 인간의 최대 관심사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는 먹을 것은 결국 돈이고 대다수 인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고 대학에 가서도 좋은 학점을 따려고 애쓰는 것은 그래야 좋은 직장에 가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공산 체제 하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거기서는 공산당이 사실상 시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당의 허락이 없으면 취직도 안 되고 식권도 받을 수 없다. 소련 공산 체제가 70년이 넘게 유지된 것도 밥줄이 끊길까 두려운 대다수 주민들이 숨죽이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체제는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곳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 살고 있는 북한이다. 동유럽이 망하고 소련이 해체되는 와중에서 북한의 김씨 왕조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스탈린과 마오쩌뚱을 능가하는 김씨 가문의 가혹함 때문이다. 스탈린과 마오 누구도 김씨 일가만큼 철저하게 정적을 제거하지 못했고 대대손손 자식에게 정권을 물려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무자비함에다 거의 완벽한 사상과 정보 통제로 북한 주민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배급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90년대 대기근으로 200만의 북한 주민이 아사했다. 이들은 결국 중국 국경을 넘나들며 보따리 장사로 연명하는 법을 배웠고 일부지만 약간의 자본도 축적했다.
이렇게 형성된 지하 시장 경제가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북한 당국은 2009년 화폐개혁을 단행, 애써 북한 주민들이 모아뒀던 푼돈을 휴지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북한 주민들이 김씨 가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애착심도 사라졌다.
최근 청와대에서 북한 담당 보좌관으로 일한 한 관계자는 “지금 북한에서 통용되고 있는 화폐는 북한 돈이 아니라 달러와 유로, 위안화”라며 “북한 주민들은 지난 번 학습 효과로 북한돈은 순식간에 휴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의 전통적인 식량 줄이던 배급 체제는 사실상 와해됐으며 이들은 각자 구명도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런 체제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거꾸로 각자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역할도 한다. 정부에 기대고 있다가는 굶어죽는다는 것을 지난 20년 간 분명히 체험한 것이다.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휴대폰도 잠재적으로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현재 북한 전역에 퍼져 있는 휴대폰 숫자는 100만대로 추산된다. 휴대폰 한 대 가격은 300달러로 북한 노동자 월급이 평균 15달러니까 일반 사람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전화가 보급됐다는 것은 북한에 이 정도 재력이 있는 사람은 꽤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 당국이 유사시 정보 통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광범위한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이를 팔아 벌 수 있는 3억 달러의 현찰이 더 아쉽기 때문이다.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그 손자 김정은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쏘아올린 로켓이 발사 한지 1분 만에 박살나 고철로 바다 속에 떨어졌다. 이 미사일 한 대 쏘느라 들어간 돈은 8억 5,000만 달러로 북한 주민들을 6년 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돈이라 한다. 북한 당국은 실패 사
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했다. 옛날처럼 속이려 해봐야 되지도 않고 비웃음거리만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북한 주민들의 당국에 대한 불신과 경멸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사실상 권력 승계 작업을 마친 김정은은 중국식이든 러시아식이든 시장 경제도 좋으니까 북한을 살릴 방도에 대한 논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리지만 지금까지 방식으로 가면 망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시장 경제 체제를 택할 경우 공산 왕조는 사유 재산을 가진 시민 계급이라는 또 다른 위협을 품에 안게 된다. 이번 미사일의 공중분해는 앞으로 닥칠 북한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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