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 롬니의 오랜 기다림은 이제 끝났다. 지난 10개월, 아니 4년여에 걸친 길고 험한 경선의 여정에서 살아남아 승리한 것이다. 진흙탕 난타전에서 허약한 도전자들에 거듭 밀리며 수모를 견디어온 ‘명목상의 선두주자’에서 마침내 ‘사실상 공화 대선후보’로 확실하게 올라섰다.
10일 릭 샌토럼의 경선중단 전격선언과 함께 2012년 미 대선은 오바마 대 롬니의 양자대결로 본격 돌입했다. 본선의 막이 오른 것이다.
샌토럼의 포기가 놀라울 것 까진 없으나 예상보다 빠르긴 했다. 지난주만 해도 강행을 천명했던 그였지만 어린 딸의 입원으로 유세를 중단한 며칠 동안 직면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정치현실은 냉정했다. 티파티-사회적 보수-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로 이어지는 표밭의 열기를 묶어 지지연합으로 조직화시키기엔 샌토럼의 자금과 조직력은 너무나 허약했다. 5월말 보수적 텍사스 주 경선을 승자독식으로 바꿔 154명 대의원을 다 차지하려던 플랜도 물 건너가고, 믿었던 고향 펜실베이니아의 표심까지 승세 탄 롬니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당의 경선포기 압력도 심해졌다. 끝이 보이는 버티기를 강행하며 당 주류 지도부와 관계를 단절하는 대신 아직 젊은 샌토럼은 4년 후, 8년 후를 기대하며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공화당 해설가들은 분석한다.
샌토럼도 아직 롬니에 대한 공개지지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샌토럼에 열광했던 보수표밭이 ‘우리후보 롬니’에게 애정어린 지지를 보내기까지엔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바마와 4년 더’와 ‘무늬만 보수인 중도파 롬니’ 중 차악을 택하는 심정으로 후자를 택한 것이라고 프린스턴대학 줄리언 젤리저 교수는 진단한다. 결국 롬니의 경선 승리 요인은 오바마와 대적할 본선에서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사실 오바마와 롬니의 공방전은 롬니가 위스콘신 등 3개주 경선에서 승리한 지난주부터 이미 달아올랐다.
오바마는 롬니를 강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를 추구하는, 서민과는 유리된 특권층의 전형으로 채색했고 롬니는 오바마가 성공을 ‘죄악시’하고 ‘반기업, 반 투자, 반 일자리 정책’으로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정의했다. 롬니는 오바마의 실책으로 개스값이 치솟는다고 공격했고 오바마는 롬니가 석유기업들의 편에 서있다고 꼬집었다.
오바마는 공화당을 비판하며 억만장자 롬니를 겨냥했다 : “그들의 철학은 단순하다. 네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어도, 의료보험이 없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났어도 그건 네 문제니 너 혼자 알아서 하라고 그들은 말한다”
롬니도 지지않고 반격했다 : “버락 오바마와 나는 근본적으로 미국에 대해 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3~4년을 정부중심의 사회를 위한 기초 닦기에 허비했다. 나는 다음 4년을 개인의 자유와 자유 기업이 이끌어가는 기회의 사회를 재건하는데 바칠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을 특권층으로부터 시회안전망을 지켜주려는 중산층의 수호자로 강조하고, 롬니는 자유시장을 망치려는 사회주의자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자신을 내세운다.
경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더 큰 싸움을 시작하는 롬니에겐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급하고 중요한 것은 이미지 쇄신이다. 경선에선 스스로 ‘심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했지만 본선에선 당락 좌우할 중도파 무소속 표밭에 어필해야하고, 말바꾸기 명수인 기회주의자, 서민에 무관심한 억만장자의 인상도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보수파, 중도파, 주류, 비주류…몇 갈래로 분열된 당도 결집시켜야 하고, 강경보수 경선분위기에 맞추느라 벌어진 여성 및 히스패닉과의 관계도 회복시켜야 하며 오바마 따라가려면 대대적인 모금도 서둘러야 한다.
오바마 팀이 샌토럼 퇴장 다음 날인 11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롬니가 본선용 이미지 체인지를 시작하기 전 먼저 롬니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
제목 ‘미트 롬니’ - “미국인들이 롬니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를 좋아하기도, 신뢰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들이 롬니와 오바마 대통령의 실체와 매우 다른 정책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면 우린 절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자, 싸움은 시작되었다. 나가자!”
공화당과 롬니가 금년 대선의 프레임을 ‘오바마 정부 심판’으로 굳히기 전에 ‘흠집 많은’ 롬니에 대한 심판으로 밀고가려는 전략이다.
풀어야할 과제도 산적해있고 당장 여론조사에선 오바마에 밀리고 있긴 하지만 롬니는 강적이다. 오바마 진영도 인정한다. 호감도와 여성지지에선 오바마가 압도적 우세이지만 가장 주요이슈인 경제정책과 연방적자 해결에선 롬니가 앞선다. 그리고 앞으로 선거까지는 207일이 남았다. 짧은 기간이 아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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