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나는 1982년 8월에 이민을 왔다. 그리고 그해 10월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미국순회공연 차 LA를 방문했다. 당시 나의 오빠가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이었기 때문에 미국 땅에서 이들을 가장 반긴 사람은 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일이 쉽지 않던 시절, 아직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툭하면 울고 있던 나에게 오빠와 시향의 방문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요 기쁨이었으니, 그 흥분은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최초의 미국투어에서 시향은 보름동안 LA, 샌타바바라,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등 서부 4개 지역에서 연주하는 스케줄을 갖고 왔다. 나는 너무나 흥분하고 오버한 나머지 오빠 옆에 딱 붙어서 설쳐대며 그들의 순회여행을 모두 따라다니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언니 집에 얹혀살던 백수였고, 비행기 표와 숙박료를 해결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향이 가족적인 분위기인데다 단원들과는 서울서부터 리허설을 쫓아다니며 안면을 익혔던 터라 스스럼이 없었다. 몇몇 단원들은 나를 마스코트처럼 귀여워하며 챙겨주었는데, 영어라도 몇마디 하는 내가 쇼핑마다 따라다니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다들 미국이 처음이라 조금씩은 쫄아있던, 촌스럽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100여명의 시향 식구들이 LAX에 내리자마자 처음 간 식당이 용궁이었고, 숙소는 윌셔 가의 앰배서더 호텔이었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역사적인 장소, 지금은 다 헐리고 RFK 커뮤니티 스쿨이 들어선 그곳이다. 유서 깊다고는 해도 많이 낡아있어서 럭서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래도 거기서 하룻밤 자본 건 내게도 특별한 추억이자 역사로 남아있다.
1982년 10월31일, LA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을 한인들이 가득 채웠다. 교민 숫자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적었지만 한국서 오케스트라가 왔다니까 모두들 정장을 하고 몰려들었다. 디즈니 홀이 없던 그때 뮤직센터는 LA에서 가장 좋은 연주장이었는데, 어떻게 시향이 그곳에서 연주일정을 잡을 수 있었는지가 사실은 큰 미스터리였다. 그만큼 1980년대 초 코리아는 그 존재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태반이었을 만큼 작은 나라였고, 시향은 그런 메이저 연주무대에 쉽게 설 수 있는 수준의 교향악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은 몇 년후 저절로 풀렸다. 시향이 연주한 날은 핼로윈 나잇, 미국인들은 아무도 그런 날 콘서트를 열지 않기 때문에 연주장이 비어있었던 것이다. 아이들까지 밤에 모두들 거리로 몰려나오는 핼로윈은 지금보다 그 시절에 훨씬 더 큰 명절이고 축제였다.
그때 지휘자는 정재동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서곡을 하나 연주했을 것이고, 한동일씨가 동행했었으니 피아노협주곡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미션 후엔 교향곡을 연주했을텐데 어떤 곡들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LA공연 후 샌타바바라로 올라가서 연주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흘쯤 머물렀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과 다운타운 구경도 하고 백화점 쇼핑도 하고 버클리 앞에서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하와이에서는 닷새쯤 있었는데 와이키키 해변의 한 호텔에 묵으며 오빠를 밀착 동행하고 시향 단원들과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녔다.
참으로 꿈같은 여행이었다. 연주자들은 리허설도 해야하고 콘서트의 긴장도 컸을테지만 나는 그냥 따라다니며 놀고 먹고 구경만 했으니 그런 신선놀음이 또 있었을까. 내 젊은 날의 가장 황홀했던 날들이라 해도 좋은 시간들이었다.
정들었던 시향식구들과 하와이 공항에서 눈물로 헤어지며 나는 LA로, 그들은 서울로 돌아간 지 두 달 후, 오빠는 지병으로 서른셋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입원 소식을 듣고 내가 미친 듯이 한국으로 달려나간 사흘 후에 눈을 감았고, 나는 서울시향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그 단원들을 다시 만나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아직도 나는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아리고, 그때 그 여행의 순간들이 오래된 영화의 장면처럼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이번에 오는 서울시향은 내가 알던 시향이 아니다. 그때의 단원은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연주 수준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래도 내게 시향은 오케스트라 이상의 영원한 사랑이요 감상이다. 그들을 맞는 내 마음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슬픔과 기쁨, 상실과 아픔, 그리고 젊음과 추억이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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