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통지서를 받는 학생들이 많은 시즌이다. 내가 교육위원으로 있는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의 토마스제퍼슨과학고등학교(TJ) 신입생 합격자 발표가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다. 그리고 전국 대학들도 일제히 합격자 통지를 시작했다. 대학들은 갈수록 입학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한다. 공통지원서를 받는 대학이 늘어감에 이에 따른 지원자 증가로 인해 합격률이 상당히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TJ의 합격통지는 아직도 우편으로 주어지지만 이제 대학 합격통지는 대부분 이메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과거처럼 합격자 발표 예정일을 앞두고 여러 날 우체통 앞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절은 지났다. 그러나 이메일 통지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기는 우편으로 올 때와 별 다름 없다. 그리고 이메일 하나하나의 내용에 따라 감정의 큰 굴곡을 맛보는 경험도 여전하다.
우리 큰 애가 TJ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 여부 통지를 기다릴 때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0년 전 일이다. 우편물 배달시간에 맞추어 며칠 동안 우체통 앞에서 기다리다가 통지서를 받았다. 물론 통지서는 우리 큰 애 이름으로 왔다. 그러나 큰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우편물을 열어 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나에게는 없었다. 먼저 열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편지봉투가 제대로 열어지질 않았다. 편지 내용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 내용이 이상했다. 합격이면 당연히 축하한다는 인사말로 시작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일텐데 축하한다는 말이 편지 서두에 없었던 것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 내려갔다. TJ에 관심을 두고 지원해서 감사하단다. 그런데 이번에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했는데 모두 합격시킬 수가 없어 유감이었단다. 여기에 다다르자 불안이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 말 들으려는 게 아닌데. 그러면 떨어졌다는 얘긴가?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가 보니 합격했단다. 이게 뭐야, 누가 합격통지서를 이런 식으로 써 가지고 사람 가슴을 철렁하게 해 하는 분한 생각도 잠깐, 합격의 기쁜 마음에 나도 크게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아이의 합격 당시에는 내가 교육위원으로 있었다. 합격 여부 통지서가 나가기로 예정된 날이 다가왔다. 담당자에게 이미 합격자 결정은 다 끝났으니 합격여부를 미리 좀 알려 줄 수 없겠느냐 물어 보았더니 절대로 안 된다 했다. 절차상 보안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통지서가 우편으로 나간 후에는 바로 알려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만약에 불합격이라면 둘째가 혼자 우편물을 열어 보고 많이 상심해 할 텐데 내가 우체통으로 먼저 달려가 통지서를 가로채고 나중에 퇴근 후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위로해 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합격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 우체통에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둘째가 대학 합격여부를 통지 받았을 때는 달랐다. 지원한 모든 학교들에서 한 날에 이메일로 통지가 왔는데 합격통지가 온 학교들 중에 둘째가 꼭 가고 싶었던 대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 약해 보이기를 거부했던 둘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둘째의 어깨를 감싸주는 것 외에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나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했다. 평소에 말은 없었지만 얼마나 제 형과 같은 대학에서 일 년이라도 같이 다녀보고 싶어했는지 잘 알기에 내가 대신 아파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자라면서, 살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도 가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실패와 실망, 그리고 그로부터의 겸양도 배워야 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자세를 키워 주는 것이다. 실패의 이유도 분석해 보고 그래서 다음에 같은 이유로 다시 실패하는 경우가 없도록 노력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녀들이 실패를 겪을 때 우리 부모들은 그들의 아픔을 진정 같이 나눌 수 있는 준비된 마음이다. 가장 아프고 힘든 자가 실패한 자신들이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마음 제대로 이해하고 나누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런데 거기에 절제되지 않은 부모들의 말실수로 인해 자녀들의 힘듦과 아픔이 더 커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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