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정신적인 의복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필요를 위한 떠남보다는 품격을 위해 옷을 입듯, 여행은 어쩌면 자신의 품위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간혹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가 있듯, 혼자되고 싶은 마음… 고독을 위한 떠남… 여행이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고상한 취미같은 것은 아닐까.
역사상 여행을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는 멘델스존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생을 통해 영국을 무려 10차례 이상이나 방문했고, 북유럽과 남유럽 가리지 않고 횡단하며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교향곡 등 수많은 여행음악들을 남겼다. 그중 최고봉은 항해 음악들인데, 스코틀랜드 해변에서 영감받은 ‘히브리디스 서곡’(일명 핑갈의 동굴)같은 곡은 서곡의 최고봉으로 꼽힐 뿐 아니라 교향시를 태동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한 곡이다. 핑갈의 동굴은 장엄한 암벽 동굴로서 뛰어난 경관 뿐 아니라 멘델스존의 혼이 살아있는 음악사적지로도 유명하다.
멘델스존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의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탁월한 색채 기술 때문이었다. 즉 음색을 표현함에 있어 그를 필적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바그너같은 자도 ‘핑갈의 동굴’을 듣고 극찬했다지만 멘델스존이 표현하는 색채의 풍부함이야말로 가히 음이 표현해 내는 최고의 풍경화라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음악이란 감정 표현의 한 수단으로서, 슬픔을 승화시키고 기쁨을 격앙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마음으로 그리는 초상화이며 내면의 실존을 대변하고 있다하겠다. 멘델스존의 경우는 우울함이라든가 실존을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공상파같은 음의 희롱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특색으로, 이는 그의 음악이 어디까지나 취미활동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하겠다. 물론 음악이 하나의 취미로 사용되는 것이 꼭 흉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 음악이 하나의 교양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멘델스존은 소위 품격에 살고 품격에 죽은 작곡가였다. 즉 귀족들 사이에서 봄바람같은 사교술, 우아한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여행과 음악밖에 몰랐던 그의 음악들에서는 늘 떠남의 철학… 그 설레임이 느껴져 온다. 동심과 같은 세계라고나할까… 고고하고 명민하며, 구김살이 없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은 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음악이기도 하다. 즉 너무 차갑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따사롭고 우아하여 서민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귀족적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어느 겨울날… 음악감상실에서 멘델스존의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세상의 음악이 아니었다. 따스하고도 눈부시고, 눈부시면서도 곧 잡힐 것 같은 꿈과 동경이 가득 녹아져 있는 것 같았다. 수년이 흐른 후…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스테레오가 생기자 가장 먼저 구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바로 멘델스존의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음반을 통해 흐르는 멘델스존의 선율은 예전에 듣던 그런 멘델스존이 아니었다. 곧 잡힐 것 같던 멘델스존은 막상 잡으려고 하자 홀연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의 음악은 이상스럽게도 다가왔지 결코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은 아니었다.
마치 우리는 초라한 신데렐라… 그(멘델스존)의 음악은 왕자와 같은 존재였다고나할까. 아름다운 교향곡 1번 역시 그랬다. 어느날 발레 공연에서 들려왔던 교향곡 1번은 참으로 세속을 벗어난… 황궁의 그것인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그처럼 오랫동안 묻혀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찌든 세파 속에서, 너무 구김살이 없는 음악이 낭만주의의 격랑 속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멘델스존은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였지만 동시대 다른 낭만파들와는 어딘가 달랐다. 귀족들과 괴테같은 지성들에게 더욱 어필했는데, 귀족들와 다소 반목했던 베토벤 등과는 매우 비교되는 것이었다. 베토벤이 폭풍우였다면 멘델스존은 비온 뒤의 하늘같았다고나할까.
세상에는 멀리서 바라봐야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법이다. 창공을 향해 나르는 잠자리의 날개… 음악으로의 여행… 멘델스존의 ‘교향곡 1번’이나 ‘핑갈의 동굴’을 아직 보지못한(?) 사람들을 멘델스존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서곡 ‘핑갈의 동굴’ http://blog.daum.net/sfmusic 에서 들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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