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머물다 돌아오면 으레 친구들이 국내사정을 물어온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최근 들어 매우 자조적이고 냉소적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 내막, 정수 장학회 강탈 여부 논란, MB 땅 차명 투기 들통 등등 사건, 사안별이 아니다.
“이게 무슨 나라야….” “싹 갈아엎어야 되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괜찮겠어?” 포괄적 탄식과 원망 섞인 질문이 부쩍 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첫째, 정부가 권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했다. 권력이 끝 모르는 부정부패, 정실인사, 행정무능의 표본이 돼 있으니 국민들의 신의가 실종되고 기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법이 힘을 잃으니 방종이 판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형님, 친인척, 측근, 동창, 고향 등 대통령을 보좌하는 단어들이 불법, 이권, 부정 특혜, 비리 등과 동의어가 돼 버렸다. 얼마 전 동화은행 사건으로 뇌물 먹고 형무소 살고 나온 사람이 집권당 비상대책위원회 좌장으로 설치거나 국회의장실이 돈 봉투 사건으로 압수 수색을 당했어도 별 충격조차 받지 않는다. 추악한 금전 비리가 만성화되어 아무런 감각조차 없어진 것이다. 국민을 노리개로 아는 초법적 발상으로 불법사찰을 감행하고 이런 권력을 우습게 보는 도덕적 타락은 법정에서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는 놈이 ‘김 아무개 만세’를 목청껏 외치기에 이르렀다.
법복을 입은 판사가 ‘가카 빅엿’ 접두어로 대통령에게 공개 쑥을 먹이고, 국회의원이 의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망동을 하고도 ‘의거’라는 찬사를 받는다. 철망 하나 사이에 두고 적이 있다며 긴장을 강조하는 이 나라의 국방이 얼마나 중대한 사명인가. 국방 장비 사들이면서도 구린내가 진동한다. 전투기, 헬기가 추락하고 탱크 포신이 굽어져 소동이다.
국민 가계 부채가 국가 예산 3년 치와 맞먹는 1천1백조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행복지수 세계 86위, 중고교까지 ‘일진회’ 폭력 조직이 횡행하는 게 교육 현장이다. 이런 세상이 아비규환이 아니고 뭔가.
둘째, 나라가 보수, 진보라는 올무에 걸려 정치가 실종되고 말았다. 저마다 보수 진보의 족쇄를 스스로 차고 앉아 어깨에 힘주고 있지만 이건 싸움이지 정치가 아니다. 지금 세계 어디에 이런 보수 진보가 있나. 지금 우리나라엔 이성을 잃은 실성한 보수 진보의 이전투구만 있을 뿐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다는 건 국민의 꿈,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다. 보수 정권의 참담한 실패로 진보의 뜻이 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시 왔지만 이마저 실망의 연속이다.
진보가 뭔가. 합리와 도덕성이 요체다. 진보라면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합리 국가에 대한 도덕성 등을 갖춰야 한다. 반미, 친중, 친북, 반국가, 반정부 등 뭘 하자는 건지 진보의 사나리오가 읽혀지지 않는다. 모두가 강물에 뛰어들자는 자학의 몸부림만 보일뿐이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던 노무현 전 대통경이 ‘한미 FTA’를 결행하지 않았나. 진보는 이런 걸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으면 재협상으로 수정하자고 우겨야 하지만 이미 협상한 것을 폐기하자니 이런 반미 행동으로 무슨 득을 보자는 건가.
제주도 해군기지도 마찬가지다. 환경 파괴 부실 공사, 비리가 있다면 당연히 시비를 걸어야 하지만 해군을 해적이라 악을 쓰며 건설 자체를 반대하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진보인가. 일본 중국과의 긴장 심화와 미군 핵기지화 등을 우려하며 반대한다지만 이러한 국제 시사 판단이야말로 우리의 해양 안보를 강대국들에 맡기자는 패배주의일 뿐이다.
국민이 기다리는 건 보수와 진보의 소통이다. 보수의 산업화 업적, 진보의 민주화 공로를 서로 인정하여 힘을 합쳐 민생복지 국가 발전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셋째, 나라의 미래를 가슴 절절이 고민하는 세력이 없다. 국내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선거를 보라. 추태 공천으로 얼룩진 국회가 열린들 뭣을 할 수 있겠나. 싸움으로 지새고 보수 진보 타령의 난장판이 뻔하다.
엉망진창 죽을 쑨 성적표 가려보려고 유니폼 갈아입고 간판 바꿔 달았다. 새누리당의 국민 기만행위라 반성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파렴치한 자세다.
나라가 빈부의 격차 권력의 행패로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앞날을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하려는 세력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뭐 무슨 X의 나라가 이래…” 이런 냉소적이고 자괴적인 국민의 신음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애국적 서민적 양심적 지도자 아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새 세력의 등장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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