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의 운명이 가히 ‘풍전등화’다. 바람에 등불이 완전히 꺼져버릴지는 6월말이 되어야 확실해지겠지만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험난한 앞날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헬스케어 개혁법이 존 로버츠가 이끄는 연방대법원의 보수연대에 밀려 자칫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흘간의 연방대법원 심리가 끝난 지금 개혁법 판결전망은, 적어도 개혁의 핵심인 ‘거의 전국민의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 조항은 ‘위헌’ 쪽으로 잔뜩 기울었다.
오바마와 로버츠 대법원장의 관계는 시작부터 껄끄러웠다. 50세 오바마와 57세 로버츠는 둘다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을 지낸 하버드법대 우수 졸업생이었지만 학교를 같이 다닌 적은 없었다. 첫 만남은 2005년 조지 부시가 연방대법원장으로 지명한 로버츠의 상원인준 때, 당시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는 로버츠가 자격은 충분하지만 그의 기록을 살펴보니 “그 뛰어난 능력을 약자에 맞서는 강자를 위해 훨씬 더 자주 사용해왔다”면서 반대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몇 달 후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인준표결에도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편에 섰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2009년 오바마 취임식에서였다. 정말 악연의 징조였을까. 대법원장이 주관하는 의례적인 취임선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로버츠가 선서문의 어순을 뒤바꿔 읽는 실수를 저지른 것. 잠시 멈칫 하다가 바뀐 어순을 따라 읽은 오바마에 대해 일부에서 위헌주장이 제기되었고 오바마는 다음날 로버츠를 백악관으로 불러 취임선서를 다시 해야 했다.
둘 사이가 진짜 팽팽해진 것은 2010년 1월 대법원이 선거자금제한법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다. 오바마는 대기업과 특수이익집단의 돈이 무제한 정치권에 쏟아드는 계기를 준 것으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강한 비판은 판결 엿새 후 의회에서 행한 국정연설에서도 반복되었다. 대법관들은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Not ture(사실 아니야)”라고 중얼대는 얼리토의 찡그린 얼굴이 전국에 TV로 중계되었고 현장에선 무표정하게 초연했던 로버츠도 후에 “정치적 분위기가 매우 우려되는 바다. 대법관들이 앞으로도 국정연설에 참석해야할지 확신이 안 선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연방대법원과 기 싸움을 벌인 대통령은, 물론 오바마가 처음이 아니다. 제퍼슨은 지방자치권 및 중앙정부 권한을 둘러싸고 존 마셜 대법원장과 갈등을 빚었고 링컨은 노예제 지지판결을 내린 로저 토니 대법원장과 대립했으며 테디 루즈벨트도 자신이 지명한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원장을 드러내놓고 못마땅해 했다.
그중에서도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연방대법원과 벌인 싸움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당시 보수파가 장악한 연방대법원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대부분에 위헌판결을 내렸다. 대공황 탈출을 위해 신설된 농촌진흥청과 국토회복청 등이 문을 닫아야했고 최저임금제와 근로기준법 등도 줄줄이 위헌 판정을 받았다.
뉴딜정책을 일단 중지해야했던 루즈벨트는 불같이 화를 냈으나 포기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중단된 정책은 유사한 정책으로 교체해 재개하는 한편 종신제 대법원에 제동을 거는 개혁을 추진했다. 1937년 대법관 수를 늘리는 이른바 법원재구성계획(court-packing plan)을 의회에 제출하며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36년 재선에서의 압승을 등에 업은 이 무모한 투쟁은 그러나 곧바로 역풍에 휘말려 좌절되었다.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도 반대했다.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투쟁 도중 상당수 대법관이 은퇴했고 루즈벨트는 7명의 새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일을 계기로 대법원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연방의회가 “각 주간 통상을 규제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헌법1조 8절에 근거하여 경제적 입법의 위헌성을 판정할 때 의회의 입법재량권을 존중하는 판결이 잇달았다. 이번 헬스케어 개혁법 소송도 바로 이 의회의 경제입법 재량권을 근거로 하고 있다.
오바마는 약자위한 사회 안전망을 중요시하는 큰 정부 지향 진보정치의 정통 후계자로 꼽힌다. 로버츠는 “선거가 결과를 낳는다는 신념의 산 증거”로 불린다.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했으나 진보 대법관이 된 데이빗 수터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보수진영이 ‘배신’을 걱정할 필요 없는 확실한 보수다. 로버츠의 대법원은 역대 가장 보수적인 대법원중 하나에 속한다.
헬스케어 개혁법 무효화는 오바마와 로버츠, 진보적 행정부와 보수적 대법원의 관계를 한층 악화시킬 것이다. 저돌적인 루즈벨트와 달리 신중한 오바마는 대법원과의 전면전을 선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작 대법원이 우려해야할 것은 따로 있다. 양극화된 정계에 염증을 내는 말없는 다수 국민들이다. 아직은 대법원을 이념에 춤추지 않는 ‘법치의 불편부당한 수호자’로 신뢰하기 원하는 그들의 시선이다.
수천만 무보험자를 구제하고 국민의 기본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시행할 ‘전국민 의료보험가입 의무화’가 브로컬리를 강제로 사먹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지 말기 바란다. 보수파 대법관의 이 같은 비상식적 ‘의문’이 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무보험의 나락으로 추락시킬까 두려워진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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