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연한 질서… 교훈적인 세상을 가리켜 흔히 ‘재미없는 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년전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다가 그만 깊은 잠에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소위 재미없는 천국 구경이었는데, 그러나 지루함때문에 빠져들었던 졸음의 순간은 공연을 보고난 뒤의 감회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만큼 작은 것이었다. 분명 재미없는 천국… 그러나 강렬한 메시지로 사람의 영혼을 강타하는 바그너의 매력이야말로 예술의 차원을 넘어선, 분명 종교의 그 무언가가 있었다.
바야흐로 수난절… 기독교의 수난절을 맞이하여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을 꼽자면 바하의 ‘마태 수난곡’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벗어난, 세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수난절 오페라를 꼽자면 단연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을 수록 좋다… 다다익선… 길게… 몇시간씩 늘어지는 가락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바그너의 작풍(스타일)은 수많은 반대파를 낳기도 했는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적대적 역풍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에게는 늘 소수의 매니아가 따라붙는, 매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독일(바바리아)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니체 역시 젊은 시절에는 바그너에 빠져 지내던 바그너 매니아의 한 명이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바그너교’였다고나할까. 그의 재미없는 천국세계는 어지간한 열정이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따라가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었다. 바그너는 이러한 고집으로 나흘간이나 연주하는 ‘니벨룽겐의 반지’ 같은 대작을 남기지도 했지만 그가 평생 추구했던 구도의 완성은 사실 그의 최후의 작품 ‘파르지팔’에 녹아 있었다.
성금요일의 전설… 성배의 이야기를 다룬 ‘파르지팔’은 한 마디로 오페라라기보다는 성극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바그너역시 이 작품을 ‘신성 축전극’이라는 거대한 명칭을 붙여 성극으로 분류했는데, 오페라와는 달리 자신의 극장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해 줄 것을 명시했다고 한다. 스타일은 물론 지루하고도 종교적인 엄숙함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다소 길고 종교적인 어두운 내용만 배제한다면 음악만큼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종교적 무색 무취… 무아의 세계를 추구했다기보다는 인간적인 고뇌… 죄의식… 삶의 빛(구원) 등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성배의 전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기독교의 매우 민감한 사항 중의 하나로서, 바그너 역시 이를 주제로 남긴 오페라가 바로 ‘로엔그린’, ‘파르지팔’등이었다. 성배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전설의 잔으로, 이 성배를 소유한 자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배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생한다는 가설이 있어왔다. 수년 전 이 성배의 내용을 주제로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출간됐고 또 영화화되어 기독교의 맹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후손을 남겼다는 ‘다빈치 코드’와는 달리 ‘파르지팔’ 속의 성배는 말 그대로 영원한 고통과 고뇌에서 해방시켜주는 기적의 신물로서 그려지고 있다. 이 신물을 수호하던 왕이 바로 티투렐이었는데 그의 아들 암포르타가 타락한 마술사의 성창에 의해 상처를 입고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암포르타스는 지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바보를 만나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파르지팔이었다는 것이다.(여기서 파르지팔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매우 종교적이었던 바그너는 원래 성직자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비록 음악에 대한 열정때문에 음악가로 남고 말았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늘 구도라고 하는 플롯이 녹아 있었다. 바그너는 음악에서는 순수를 부르짖었지만 현실은 죄로 물들었던 이중인격자였다. 그는 절친한 친구(뵐로)의 부인(코지마)을 가로챘으며 출세를 위해서는 약속이나 신의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러기에 그는 죄의식을 씻어줄 성배가 필요했고 어쩌면 그것은 음악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은 난해하고도 어마어마한 도전으로 점철된… 길고 험난한 가시밭 길 같은 것이었지만 잔잔한 성배의 믿음은 그의 음악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또한 구도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제 수난주간… 비록 ‘파르지팔(Parsifal)’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매니아는 아닐지라도 성배의 전설 이야기가 잔잔히 흐르는 ‘파르지팔’의 전주곡만이라도 들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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