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중국지도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전국인민대표회의 폐막을 맞아 일종의 고별기자회견을 가졌다. 원자바오는 같은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충칭시 당서기인 보시라이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최고위급 공산당 간부가 전국에 생방송되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처럼 공개리에 공격을 받기는 8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원 총리는 또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정치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경제개혁이 끝까지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대혁명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문화대혁명’은 그 자체가 중국에서는 금기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자바오는 마치 작심이나 한 듯이 이 같이 이례적인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신화사 통신은 보시라이 당서기 해임 기사를 해설 없이 짤막하게 보도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대체적인 분석은 그러나 권력투쟁으로 기울고 있다. 권력교체를 앞두고 공산당지도부가 전례 없는 암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분석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저마다 개혁을 이야기했다. 그 정점이 원자바오의 개혁촉구 발언이다. 그 전국인민대표회의는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괴이한 법안을 가결했다. 반정부 인사들을 아무 혐의 없이도 6개월간 구금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중국 공산당은 권력투쟁의 와중에 있다는 시그널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분석이다.
10년마다 있는 권력교체기를 맞아 총리가 전인대를 통해 장시간의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하나의 관례다. 2003년 주롱지는 고별기자회견을 통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개혁을 말했을 뿐 정치개혁에는 함구했다.
원자바오는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문화대혁명 같은 비극의 되풀이 가능성을 경고하면서까지. 혐중(嫌中)파 관측통이라고 할까, 그런 전문가들도 중국에서의 문화대혁명 재연 가능성을 제시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그는 이토록 비관적인 발언을 한 것인가.
공산당 내에 포진해 있는 강력한 자유진보세력을 대변한 발언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중국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는 면피성의 발언을 한 것인가.
“중국이 스스로를 개방하고 교역에 나섰을 때 연안지역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한다. 반면 내륙지역은 빈곤에 허덕인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 19세기와 20세기 초가 그랬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80%의 중국인들, 다시 말해 내륙지역 주민의 연 소득은 볼리비아만도 못하다.”
“이 같은 빈부의 격차는 갈등을 불러오면서 중국 사회의 모순은 날로 확대된다. 모택동은 바로 이 갈등을 이용했다. 대장정을 통해 절대 다수인 내륙지역의 가난한 농민을 혁명의 전위에 내세워 마침내 부유한 연안지역을 정복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중국은 곧 평등사회가 됐다. 그러나 극히 빈곤한 사회가 된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이 일찍이 한 지적이다. 인용이 길어진 것은 다름 아니다. 원자바오의 문화혁명재연 가능성 경고에서 보시라이 공개성토, 그리고 그의 실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과 관련해 뭔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보시라이는 내륙지역의 최대도시 충칭시의 당서기장이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내륙지역 주민들의 불만고조와 관련해 그가 내세운 것이 이른바 충칭모델이다. ‘농촌공’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을 위해 혁신적인 주택정책을 펼쳤다. 부패한 관리를 몰아냈다. 그리고 모택동 정신 되찾기 운동에 나섰다. 대중을 동원한 홍가(紅歌)부르기 캠페인이 그것이다.
중국사회가 맞고 있는 모순을 모택동 주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 충칭모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대중의 지지에 기반을 둔 정치지도자로 스스로 발돋움을 해온 것이다.
그의 그 야심찬 대중운동에서 현 당 지도부는 ‘조반’(造返)의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창홍타흑’(唱紅打黑?홍색문화를 고취하고 폭력과 부패 등 사회악을 몰아낸다)의 창 뿌리가 언제 기득권층을 겨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보시라이 몰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퇴진은 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고 그 보다는 훨씬 복잡한 중국권력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권력투쟁은 때문에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시라이의 후임으로 장더장 국무원 부총리가 임명된 것부터가 그렇다. 그는 북한의 김일성 대학 출신에, 보시라이와 마찬가지로 ‘태자당’의 일원이다. 게다가 권력의 핵인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추대될 가능성도 큰 인물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는 보다 큰 그림은 무엇일까. 국가최고 권력의 제도화도 안 된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불균형은 버티기 힘든 임계점까지 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국가가 중국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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