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오래 전,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흑인 교수가 자신의 아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며 하이웨이에선 운전을 조심하라고 들려준 말이 생각나곤 한다. 아들이 승용차를 타고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앞에는 대형 트레일러가 가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앞에 가던 트레일러가, 시속 60마일로 달리던 이 차를 덮치고 말았다. 앞서가던 트레일러가 어떻게 뒤 따라오던 자동차를 덮쳤을까. 원인은 간단했다. 앞차와 트레일러를 연결해준 핀이 빠져버렸던 것이다. 구급차가 오고 난리가 났다. 교수의 아들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으나 그는 결국 얼굴이하 전신이 마비된 1급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교수 아들이 탄 자동차와 앞서가던 트레일러가 충돌하게 된 그 시점과 장소가 어떻게 일치되었을까.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한두 번쯤은 사고를 겪게 된다. 자신의 과실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상대 차의 과실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왜 하필이면 그 장소와 그 시간에 그 차와 충돌해 사고가 났을까? 1초만 그 때와 장소를 비켜 갔으면 그런 사고는 나지 않았을 텐데. 이런 경우 그 사고의 원인을 우연의 일치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필연인가. 세상을 살다 보면 자동차 사고뿐만 아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필연적이고 필연이라기엔 너무나 우연적인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운명이라 한다.프랑스의 생화학자이자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자크 모노는 그의 저서 ‘우연과 필연’을 통해 물질로부터의 생명의 탄생, 동물과 인간의 관계, 진리의 본질, 인간의 자유의지와 진선미에 대한 의식은 우연의 산물이라며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의 말을 빌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라 강조한다.
필연성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있을 수 있다. 의사로부터 술과 담배를 마시거나 피우면 간암이나 폐암이 올 수 있다고 경고를 받은 환자가 있다 치자. 그런데 그 환자는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간암이나 폐암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이런 케이스는 결과와 원인 사이에 음주와 흡연이 과정이 되어 그의 죽음은 우연성이 아닌 필연성이 된다. 산에서는 안전을 제일 우선적으로 여기는 등산객이 있다. 그는 동료들에게 산에서 좋은 공기와 자연의 정기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항상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고 주지시킨다. 특히 암벽 등산 같은 경우엔 더욱 안전이 요구된다. 그렇게 수십, 수백 번 안전을 강조했지만 등산객이 그걸 무시하여 일어나는 사고로 인한 불상사는 필연성이 된다.
법정심리에서 배심원들이나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다. 그래서 형량이 줄어들거나 아예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범법자의 행위가 고위성이 있었냐 아니면 돌발적으로 행해진 것이었냐 이다. 배심원 판결이 무죄로 의견이 모아질 때엔 범법 행위가 정당방위였을 때이다. 이런 경우 고위성은 필연에 가깝고 돌발적인 것은 우연에 가깝다. 그래서 우연적인 사고, 즉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엔 과실치사가 된다. 자신의 삶과 하루하루의 생도 필연성이 연관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 예는 많다. 우리가 부모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태어나는 것 그 자체는 우연이지 필연은 아니다. 하지만 태어나 장성하여 독립한 후 자신의 삶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결과는 필연일 수 있다.
과정철학의 창시자, 혹은 20세기의 데카르트라 불리는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모든 실재의 존재를 과정으로 본다. 그는 뉴턴의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사물의 존재를 형성과정으로 보며 우주와 인간의 개념도 하나의 사건인 과정으로 지적한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되어짐의 과정’이라 풀이할 수 있다. 우연과 필연은 어쩌면 과정 속 사건의 연속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수 억만 분의 1이란 확률로 세상에 태어난 인간 생명. 필연인가, 우연인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우주의 수수께끼와 생명의 신비를 비롯한 모든 신비스러운 이야기들. 우연인가, 필연인가? 시시각각 우리네 삶 속에 묻어 있으며 다가오는 필연과 우연이란 곡절 속에 우리네 삶은 오늘도 가며 또 내일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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