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엔 대통령 선거가 유달리 많다. 5년 단임제인 한국의 대선이 4년 + 1회 중임 선거제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한두 달 차이로 있게 된다. 러시아의 재미없는 선거는 지난 일요일에 치러졌다. 내달에 있을 프랑스의 대선에서는 인기 없는 사르코지가 재선에 실패해서 평시민이 될 듯하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들이 백중세라서 누가 당선되든지 간발의 차이로 되는 상황이 흥미진진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후 헌법 때문에 심복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자신은 수상으로 있다가 다시 옛 자리를 찾고자 하는 푸틴의 당선은 기정사실이었기에 관전 흥미가 전무했다. 다섯 명의 다른 후보들은 돈을 받고 모양새를 갖추느라고 출마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소련의 비밀경찰 KGB 출신인 푸틴의 영구 집권 시나리오는 일장춘몽일 뿐 다음에 재선되기도 어려울 듯하다. 소련제국 붕괴 이후의 러시아는 스탈린 시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의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고 칼럼에서 자신이 대학원 학생시절이었던 1979년 처음으로 소련에 갔었을 때 시민들이 발만 보고 걷는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고 회고한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옐친의 민주화에 따른 무질서와 부패로 푸틴의 정권 쟁취가 가능해졌고 그가 사법부 독립을 빼앗고 미디아의 자유를 억압했을 뿐 아니라 푸틴의 전횡을 비난하던 몇 언론인이 암살되기도 했지만 그의 전권 정치는 스탈린의 독재와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선거에 돈을 받고 나왔는지는 몰라도 경쟁(?) 후보가 있었다는 사실에 더해 과거에는 독재자의 당선 투표율이 99.99%인데 비해 푸틴의 것은 겨우 65%였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대도시들에는 자기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아이들을 데리고 맥도날드에 가는 중산층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작년 12월의 국회 선거에서 푸틴이 이끄는 연합 러시아당이 이기기는 했지만 부정 선거로 그리되었다는 데모가 큰 도시들에서 있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늘면 정치적으로도 발언권을 요구하여 결국은 민주화로 향하게 되는 추세라고 낙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푸틴 정권이 민주화 열기를 막으려 한다면 재선은커녕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크레믈린 궁을 떠나야 하는 혁명적 변화마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는 않다.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2007년 재임 시 모스코바를 방문, 젊은 기업인들과의 회의에서 러시아에 독립된 미디아가 없다는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자 어떤 청년이 “TV를 누가 봅니까. 우리 모두는 인터넷에 매달려 있습니다”라고 대꾸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그 젊은 기업인들 중 반 이상이 유럽과 미국의 유명 경영 대학원 출신들이었던 것도 지적한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정치적인 억압은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아직도 지지해서 비난 대상이 되고 있는 중국 정부도 인터넷 확산으로 인한 젊은이들과 중산층의 공산당의 독재에 대한 불평불만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공산당 제1세대 주축 인물들의 후손을 지칭하는 태자당의 하나로 내년이면 주석 자리에 오를 시진핑의 십년 권좌도 적지 않은 개혁과 개방의 요구에 시달릴 듯한 조짐이 보인다.
세계은행과 중국 국영 개발연구센터의 공저로 최근에 발표된 보고서는 중국이 향후 20년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개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 조정에는 자유로운 토의를 허용하고 법치를 확립하며 정치 절차를 개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미국의 유학생 중 최대 다수는 중국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이다. 이들이 짧게는 4년, 길게는 8, 9년 미국 문화 속에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언론 결사의 자유, 양당의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종교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요체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게 되는 동시에 자기 나라의 정반대 현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귀국하면 문화의 재충격을 겪게 될 것이고 각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공산당의 일당 독재 보다는 더 나은 제도로의 개혁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시작하거나 그에 동참하게 될지 모른다.
아랍의 봄이 보여주었듯이 인터넷에 의한 민주화운동의 군중 동원 가능성은 엄청나다. 러시아와 중국의 다음 10년이 집권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위태로운 이유이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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