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첫 전시회 여는 ‘리스 파터리’ 창업주 이병응씨
▶ 16~31일 애지아트 갤러리
이병응(73·William Lee)씨는 성공한 기업인이다. 70년대 초 미국에 와서 맨손으로 도자기 회사‘리스 파터리’(Lee’s Pottery)를 세우고 미국 최대(어떤 이는 세계 최대라고 주장한다)의 화분제조 기업으로 일궈낸 그는‘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온타리오에 공장이 있는‘리스 도자기’는 월마트와 홈디포, 타겟, 로스 등 대형 체인스토어에 납품하며 미 전국에 판매망을 가진 유일한 화분업체로, 아마도 거의 모든 미국인 가정에는‘리스 파터리’ 화분이 몇 개씩은 있을 것이다.
40년 전 청년 이병응은 웨스트LA의 라시에네가 거리에 작은 상점을 내고 손으로 빚어 만든 생활도자기를 팔았다. 쇼윈도에 내놓은 그릇과 꽃병, 화분들은 지나던 미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홍익미대 도예과 1기생인 그는 졸업하던 해(1964) 대한민국 국전에 입선하고 상공미전에 특선(국무총리상)했으며 71년 도미 후 미네소타 주립대학 도자기 연구원을 지냈을 정도로 타고난 미적 감각을 가진 도예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 한 덩어리를 사면 아이의 우유를 사지 못해 아내의 원망을 들어야 했던 배고픈 예술가는 아트를 포기하고 비즈니스에 매진하기로 한다.
예술적 디자인에 한국의 정서가 스며 있는 독특한 그의 생활용기들은 안목 있는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고객의 주문에 따라 커스텀 메이드도 하면서 장사가 제법 궤도에 오르던 어느 날 홈 데코레이션 전문업체 ‘피어 원 임포츠’(Pier One Imports)와 계약을 맺으면서 사업이 도약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상품을 ‘화분’ 한 분야로 집중해 전문성을 키워갔고, 직원 50명이 물레를 돌려가며 만들던 것을 도자기 찍는 기계를 자신이 최초로 개발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리고 1985년, 굴지의 K마트와 납품계약을 뚫으면서 ‘리스 파터리’는 날개를 달고 펄펄 날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하루 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몰랐다는 이병응 회장. 그렇게 40년을 비즈니스 일선에서 일하며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던 그는 지난해 사업의 대부분을 두 아들에게 넘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카메라. 비즈니스 때문에 평생 접어두었던 예술에 대한 꿈과 열정을 사진을 통해 봇물 터지듯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가 이제 사진작품전을 갖는다. 오는 16~31일 ‘장엄한 자연의 숨결 따라’란 제목으로 아씨마당 2층의 애지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사진전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사진만 생각하고, 한국으로 미국으로 사진 찍으러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고, 한 장면 찍으려고 밤을 새웠다는 그가 그동안 찍은 수만장 가운데 30점을 모아 발표하는 생애 최초의 개인전이다.
“렌즈를 통해 보는 자연은 거짓이 없어요. 굉장히 맑지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줌 렌즈로 들여다보는 꽃, 망원렌즈로 당겨서 보는 머나먼 풍경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신비스럽고 매력적입니다. 사진의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빠져나올 수가 없네요. 한마디로 미친 거나 마찬가지죠. 과장 좀 섞어 말하면, 도둑이 다 집어가도 사진기만 있으면 살 것 같아요. 얼마나 좋은지 손에만 잡으면 애들같이 쓰다듬어주고 있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사진전을 연다고 하자 동문, 친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열어 드려야 한다며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이다. 남가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문회는 이 전시를 동문회 초대전으로 개최하기로 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주 이병응 회장의 전시회 인터뷰까지 함께 따라온 동문회 임원들은 “2007년 이 회장이 ‘자랑스런 홍익인’으로 선정됐을 때 동문 회보에 소개된 그의 입지전적 스토리가 수많은 후배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며 마치 자기 개인전이라도 되는 듯 서로 열을 올리며 선배의 위상과 업적과 작품에 대해 치하했다. 평소 많이 베풀고 도우며 인덕을 쌓아온 이 회장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홍대 동문회 상임이사장이며, 사대부고 동문회 회장과 이사장, 장학재단 이사장을 거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회장은 항상 두둑한 도네이션과 물심양면 지원으로 후배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놀란 것은 미주예총 회장이며 무용평론가 이병임씨가 이병응 회장의 누나로,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천하의 이병임 회장’이 동생의 개인전의 의미를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다. 이병임 회장은 “흙 한 덩이 살 수 없었던 동생이 예술을 접고 고생 많이 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고 “이제 기업인으로 성공한 그가 죽기 전에 창조자의 길을 걷겠다며 카메라를 잡고 사진작가로서 인생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누구보다 기쁘다”고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자랑스런 한인교포들’(1997)과 ‘미국을 빛낸 한국인들’(2001) 책자에 수록됐고, 한인 역사박물관 주관 ‘미주이민 100년 기념 한인인명록’(2011)에 선정됐으며, LA 시의회로부터 감사장(2011)을 받은 이병응 회장은 그러나 올해 2월 미술잡지 ‘버질 아메리카’(Vergil America)에 자신의 사진작품들이 특집 게재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자신의 첫 개인전에 부치는 ‘작가의 말’에서 그는 삶과 예술,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흙과 자연, 이 두 가지는 내 삶의 바탕이었고 내 예술세계의 전부였다. 반세기 가까이 몸 담아온 산업 도자기의 세계에서 흙을 만지며 늘 공허했던 예술혼이 충만감을 느끼도록 해준 것이 사진의 피사체가 되는 자연이었다. 흙과 자연과 함께 한 나의 예술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주고 순리를 따라 살도록 이끌어줬다. 내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들을 수 있게 해준 것이 카메라 렌즈다. 남과 다른 사진, 나만의 사진, 나의 예술혼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나는 걷고 또 걷는다”
개막 리셉션은 16일 오후 6~9시.
Assiart Gallery 3525 W. 8th St. LA, CA 90005
문의 (213)210-4177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