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떠한 시대적인 상황에도 불변하는 명제는 바로 모든 인간들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할지라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실, 삶의 위기, 상처, 절망, 분노, 소외, 억압, 아픔과 울부짖음과 같은 상담의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감정과 주제들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며, 마치 무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타인들에 의해서 강요되곤 하는 것들이다.
나로 하여금 인생을 좀 더 깊이 있고 가치 지향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준 핵심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단어이다. 벌써 오랜 전의 일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생 시절에 종종 오산리 기도원을 방문하곤 했었다. 그 기도원을 소유하고 있던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혼자 부담 없이 하루 정도 기도하러 가기에는 안성맞춤인지라 자주 이용했던 것이다. 밤새 기도굴에서 기도하고 나와 아침에 서울로 올라가는 기도원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보통 시간이 좀 남는 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바로 정거장 옆에 있는 그 교회 소유 묘지를 둘러보곤 했었다. 묘지에 적혀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본다. 당시 내가 스물 두세 살 정도였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 열 살 정도의 나이에 그만 하나님이 데리고 간 어린아이들도 적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들의 무덤 앞에서 내 마음을 정돈하고 기도하며, 삶의 무게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결심을 하곤 했었다. 아울러, 언젠가 나도 저 곳에 묻혀야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곤 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즐긴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살아가야 할 시간에 집중하지 청승맞게 웬 죽음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느냐고 핀잔을 줄 법도 하다. 어떤 사람은 죽음이라고 하면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상담을 하다 보면 마치 인생 백 년, 천 년 살 것처럼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여전히 갈등과 다툼과 질시와 욕심에 사로잡혀 해결되지 못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과 치유를 가져다준다. 오늘 살아있는 내가, 내 가족이, 나의 이웃이, 내가 쌓아왔었던 물질과 성공이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고야 말 것이라는 죽음과 끝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한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들, 삶의 무게들이 오히려 감사해야만 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왠지 남과 비교하기만 하면 거추장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나 자신, 불만족스러운 배우자와 자녀들,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수입, 실패와 상실감으로 인해 자살하고픈 충동들. 이러한 것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있기에 느끼고 갈등하는 요소들이 아닌가. 오늘 내가 죽는다면 위에서 말한 그 어떤 것도 우리들과 동행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고 동행할 수 없기에, 이 세상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어려움과 기쁨을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
나는 인간 그 자체로서의 강영우 박사를 존경한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감사하며 남은 날을 정리하며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사회를 향하여 보여준 그의 진지하고 성실한 모습. 그 모습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또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하는 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하는 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사업의 실패로 두려워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으로 허망해 하고 있는가.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창피하다고 아이를 구박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분 때문에 목 놓아 있는가.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겸손하게, 움켜진 것 조금만 풀어놓고 가볍게 그러나 열심히, 진지하게 살아가자. 죽음이 비켜갈 인생, 아무도 없지 않은가.
장보철
워싱턴 침례대학 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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