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으셨다. 한자로 ‘일룡(一龍)’이니 ‘한 마리의 용’인 셈이다. 내가 맏이로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당신에게 아들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적도 많았다. “이룡”은 보통이고, 당시 한국 TV에서 종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며 등장하던 코미디언의 이름을 따 “삼룡”이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문’을 뒤집으면 ‘곰’이 되기에 때로는 “곰일룡”이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 왔을 당시 내 이름의 영어 스펠링은 우리 가족의 이민 서류를 도와주시던 분이 정해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Ilryong’으로 스펠링이 된 내 이름은 미국인들이 발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L’과 ‘R’이 연달아 겹쳐 있는 부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당시 변경할 기회가 있었으나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 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부터 대학을 거쳐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 미국인 친구들은 나를 발음이 어려운 first name “Ilryong” 대신에 그냥 발음하기 쉬운 last name “Moon”으로 불렀다. 그런데 “Moon”에는 밤하늘에 뜨는 ‘달’이란 뜻도 있지만 속어로 “엉덩이를 까보이다”라는 의미도 있어 이 또한 가끔 놀림의 도구가 되곤 했다.
1995년에 처음 공직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나의 캠페인 매니저는 혹시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었다. 유권자들에게 조금 더 친근감을 줄 수 있고 익숙한 이름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일룡’과 비슷한 발음이 될 수 있는 ‘윌리암,’ ‘엘리’ 등이나 ‘I’로 시작하는 ‘아이반’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바꾸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께도 죄송스러울 것 같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길에 꼽는 캠페인 사인을 만들 때 유권자에게 너무 생소한 감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예 성인 ‘Moon’만 사용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말이다.
우리집 애들 이름을 짓게 되었을 때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 이름과 미국 이름이 모두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은 관습대로 당연히 내 성을 따르게 되지만 애들 엄마 성도 포함시키는 것이 공평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우리집 애들은 엄마의 성까지 포함해 두 개의 middle name을 갖게 되었다. 사실 한국식 이름과 미국식 이름 중에 어떤 것을 first name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한국식 이름을 first name으로 사용하게 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에 와서보니 조금 후회가 된다. 한국식 이름을 영어 알파벳으로 쓰니 철자수가 제법 많고 미국인 친구들이 발음하기에도 쉬운 것이 아니다. 결국 친구들은 이름 전체를 부르지 않고 줄여서 부르게 된다. 물론 middle name 중 하나로 지어준 미국식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부르던 이름을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도 어색해졌고 엄연히 있는 first name을 제쳐두고 middle name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싶었다.
나와는 달리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갈 애들한테 가장 편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었는데 그 부분에서 나의 사려가 깊지 못했다는 후회가 찾아온다. 누가 내 이름을 물어 볼 때마다 큰 소리로 몇 번씩 거듭해 발음을 해주어야 하고 스펠링을 줄 때면 몇 번씩 되풀이 해주어야 하는데 우리집 애들도 마찬가지이다. 본인들의 이름을 대면서 줄여서 이렇게 불러달라고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미안함이 든다. 물론 지금이라도 개명을 할 수 있겠으나 평생 사용해 오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바꾸고 싶어도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막상 애들이 이름을 바꾼다고 하면 약간은 서운한 감정이 들 것도 같다. 어쨌든 아버지로서 내 나름대로 고민하며 지어준 이름이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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