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 롬니가 또 한 번 되살아났다. 지난 몇 주 피 흘리며 비틀대던 ‘롬니 대세론’이 28일의 승리로 추락의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다시 비상(飛翔)할 수 있을까는 미지수다. 다음 주 ‘수퍼 화요일’의 장애를 딛고 나르기엔 상처투성이 대세론의 날개는 아직 힘겨워 보인다.
롬니에겐 28일이 ‘수퍼 해피’ 화요일이었다. 기대했던 초반 독주는커녕 몇 번이나 2위로 밀려나는 ‘굴욕’을 감수해온 공화경선이 중반으로 접어들기 전, 절박하게 필요했던 승리를 전국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이루어낸 것이다.
애리조나에선 예상대로 압승을 거두었고 미시간에선 릭 샌토럼과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운 끝에 힘겹게 올라섰다. 미디어들은 ‘초라한 1위’ ‘추한 승리’라고 타박하지만, 승리는 승리다. 롬니 스스로 빅토리 스피치를 통해 역설했다 : “우린 크게 이긴 건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승리다. 그것으로 됐다”
자신의 텃밭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난 롬니에게 생사의 시험대가 되었던 미시간 경선은 후보 롬니의 강점과 약점을 한 눈에 보여준 전투였다. 그의 고향이다. 그는 아버지가 주지사를 역임한 이 지역 정치명문가 태생이다. 그래서 ‘따 놓은 당상’으로 안심했던 미시간이다. 그런데 2월초 샌토럼 돌풍이 몰아치면서 그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한때 샌토럼에게 15% 포인트 차이로 밀렸다가 가까스로 만회한 것은 선거를 눈앞에 둔 지난 주말이었다.
롬니 승리의 최대요인은 이번에도 ‘당선 가능성’이다. 경제정책을 들고 본선에서 오바마와 대결할 경쟁력을 가진 후보는 “현재로선 역시 롬니”라고 인정받은 것이다. 미시간 출구조사에 의하면 ‘경제’를 최우선 이슈로 꼽은 유권자의 다수는 롬니에게 표를 던졌고 ‘낙태’가 우선 이슈라는 유권자그룹에선 77%가 샌토럼을 지지했다.
보수진영의 불신은 여전하다. 지금까지 11개주 경선, 20회 공개토론을 치르며 3천만달러의 광고비를 쏟아 붓고도 보수표밭의 마음을 얻지 못한 롬니의 입지가 이번 선거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매우 보수’로 자칭한 유권자의 50%는 샌토럼을 찍었고 롬니 지지는 35%에 머물렀다.
지지층의 성향도 바뀌지 않았다. 확산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롬니의 최강 지지층은 언제나 그렇듯이 고소득·고학력·고령층으로 집계되었고 공화당의 충성 표밭인 백인 블루칼러 근로계층은 ‘억만장자’ 롬니에게서 더욱 멀어지며 ‘광부의 손자’인 포퓰리스트 샌토럼에게 몰렸다. 샌토럼이 ‘사실상의 승리’라고 주장할 만큼 신승이었다.
‘진정한 보수’를 자신의 기치로 내건 샌토럼이 강경보수 이념을 지나치게 떠들어대며 제 발등을 찍지만 않았어도 승패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대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오바마 대통령을 “잘난체하는 속물”로 헐뜯는가 하면 낙태는 물론 피임까지 절대 반대하는 등 샌토럼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정교분리 스피치를 읽으면 “토할 것같이 역겹다”는 그에게 가톨릭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여성의 평등권보다 가사와 육아를 우선시하는 그의 발언에 여성 유권자들이 분개했다.
하긴 스스로 표를 깎기는 롬니도 마찬가지였다. 실언이 잇달았다. 문제의 발언들은 가뜩이나 서민들이 느껴 온 ‘억만장자와의 거리감’을 실감케 했다 : “별로 많지 않은 37만4천 달러의 강연료”“내 아내가 모는 두어대의 캐딜락”“자동차경주팀을 소유한 여러명의 친구들”“극빈층에 대해선 별로 걱정 안한다”“1만달러를 걸겠다” - 그의 입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런 표현의 정치적 함정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면 롬니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보통사람과의 소통 부재’ 문제 역시 풀리게 될 것이다.
다음주 수퍼 화요일 10개주 경선 중 최대 격전지가 될 오하이오의 표밭 성향은 미시간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롬니에 등돌려온 복음주의 보수층과 블루칼라 근로계층 인구 밀집지역이며 28일 현재 샌토럼의 지지율이 37%로 26%의 롬니를 훌쩍 앞서고 있다. 가을 본선의 주요 접전지이기도 한 이곳 경선은 ‘선두주자’ 롬니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전투다. TV광고비로만 이미 300만달러가 뿌려졌다. 플로리다와 미시간에서 그랬듯이 오하이오에서도 자금과 조직으로 중무장한 ‘롬니 머신’은 라이벌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것이다. 여기서 이겨야 롬니의 저력이 그나마 인정된다.
현재의 지지율로만 보면 수퍼 화요일의 싹쓸이 승자는 없을 듯하다. 주마다 특성에 따라 승자가 달라질 것이다 : 열 곳 중 대의원 수가 77명으로 가장 많은 조지아는 이 지역 출신 깅리치에게, 매사추세츠와 이웃 버몬트, 샌토럼과 깅리치가 투표용지에 이름도 못 올린 버지니아, 모르몬 인구 많은 아이다호는 롬니에게 갈 확률이 높고 보수성향 강한 남부 오클라호마와 테네시에선 샌토럼이 유리할 것이고…
이제 중반전에 들어선 공화경선은 롬니 대 샌토럼의 대결로 정착되고 있다. 각자 지지표밭이 뚜렷하게 다른 양강구도다. 선두주자는 롬니다. 초반 11개주 경선에서 득표도 가장 많이 했고 대의원 수도 가장 많이 확보했으며 선거자금과 공개지지 선언 확보에서도 단연 1위다.
그런데도 여전히 확실한 것은 없다. 판세가 뒤집어지는 롤러코스터 등락을 몇 회전이나 더 치러야 후보가 결정될 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중도파 롬니가 과연 극단적인 티파티에 좌우되는 현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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