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뱅커인생, 고난 없는 성공은 없죠”
지난 2005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흑자은행이 됐습니다. 2010년 4월 처음 부임해 보니 직원들이 다소 주눅이 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뭉쳐 있습니다”
‘텔러 출신 행장’ ‘한인은행 최초 여성 행장’ 등 숱한 수식어를 갖고 있는 민 김 오픈은행장(52). 부임 이후 2년 만에 은행이름 변경, 청지기 사회봉사 프로그램 창설 등 소규모 은행으로서는 쉽지 않았던 경영 드라이브로 은행 이미지를 바꾸고 특히 수년 동안 은행 성장의 발목을 잡았던 ‘조건부 영업중단 명령’(C&D)으로부터 벗어나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 행장은 지난 27일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지난 30년 은행생활의 소회와 오픈뱅크의 성장전략을 밝혔다. 김 행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2010년 4월 FS 제일은행(오픈은행의 전신) 취임 후 2년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과 보람 있었던 일 하나씩을 꼽는다면.
▲어려운 시기에 행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지난해까지는 정신없이 바빴다. 지난해 3월 완료한 1,100만달러 규모의 증자가 가장 힘들었다. 취임 전에 은행 차원에서 시도한 증자가 한번 실패했기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은행의 체질 개선에 과감히 나섰고 은행 비전을 투자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때 성취감과 보람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은행명 변경과 흑자 경영도 가능했다고 본다.
-지난해 창립 이후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먼저, 2010년 4월 취임 후 바로 진행한 일이 부실대출 정리였다. 막대한 부실대출을 1년여에 걸쳐 과감하게 정리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SBA 론 대출에 사력을 다했다. 2012회계연도 1분기(2011년 9~12월) SBA 론 대출순위에서 LA카운티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위해 SBA 론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기도 했다.
현재 임직원 43명 중에서 35명이 취임 후에 새로 영입된 식구들이다.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한인은행으로서는 드물게 창립 초기부터 자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픈은행은 ‘나눔’이라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수익의 10%를 무조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해 수익의 정확히 10%인 15만달러를 각종 커뮤니티 단체에 지원한다. 커뮤니티가 건강해져야 은행도 성공한다는 철학에 은행 이사진들도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한인 은행권의 지각변동이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틈바구니에서 소형 은행으로서 오픈은행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소형 은행으로서 전략은 소형 은행이어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십분 살리는 거다.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고객 밀착형 마케팅 등이 우리 은행이 가진 강점이다. 당장의 지점 확대보다는 인력 보강과 더욱 내실을 기해 소형 은행이지만 속이 꽉 찬 은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올해 상반기 안에 마지막 남은 감독국 제재조치도 곧 풀릴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올해가 오픈은행에도 커다란 기회가 될 것으로 감히 예상해 본다.
-나라은행에서 오픈은행으로 옮겨 오면서 큰 은행과 작은 은행에서의 행장으로서의 역할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규모가 작다보니 행장의 역할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라에서는 행장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될 일을 오픈에서는 직접 발로 뛰면서 챙기게 된다. 영업에서부터 대출심사까지 임직원들과 함께 일한다. 그러다보니, 의사결정이 나라에서보다 신속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우리 은행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다행히 지난해 실적이 좋아, 열심히 뛴 보람이 있다.
-올해로 은행권 입사 30주년을 맞는다. 감회가 새로울 거 같은데.
▲82년 윌셔은행에서 텔러로 입사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회 초년생으로 의욕이 넘쳤다. 입사 순간부터 행장이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웃음) 지점장, 부행장, 전무를 거쳐 25년 만에 행장에 올랐을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금융위기로 은행 내외 경영 여건이 어려운 시기여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그래도 훌륭한 선배들과 고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분들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성으로서 행장까지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 같다.
▲주위에서 그런 말을 자주 하신다. 당시에는 한인사회가 남성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우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은행권만큼은 실력위주의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인은행권 전체에서도 지점장 이상 고위직에 여성 파워가 두드러진다.
-최근 LA 비즈니스 저널에서도 은행권의 막강한 여성파워를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은행권 여성 성공시대’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꼼꼼한 성격인데다, 대인관계도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많은 은행 지점장들이 여성인 점만 봐도 그렇다. 이제는 남성이 은행 지점장을 하면 오히려 어색해 보이기까지 하다. 육아 부담만 줄어든다면 은행권에서의 여성 성공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2의 여성행장이 곧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30년 뱅커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고 본다. 굳이 꼽아본다면 나라은행에서 행장 선임과정에서 빚어진 내부 진통으로 후유증을 겪었던 1년 동안이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2인자로서의 설움과 견제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난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성장통’이지 않았나 싶다. 1년 후에 행장으로 승진되지 않았나. (웃음)
-올해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9월이면 할머니가 된다. (웃음) 건강한 손주를 안아보고 싶은 꿈에 벌써부터 설레고 있다. 손주까지 포함해 우리 식구가 모두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싶은 게 가장 큰 올해 소망이다.
민 김 행장 약력
-1974년 미국 이민
-1982년 USC 금융학과 졸업
-1982년 윌셔은행 입사
-1985년~1995년 한미은행 근무(지점장 역임)
-1995년~2010년 나라은행 근무(행장 역임)
-2010년 4월 오픈은행장 취임
<이일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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