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퍼시피카(Camerata Pacifica)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내악 그룹이다. 처음에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주요 멤버이기 때문에 찾아다녔는데, 갈수록 이 앙상블의 연주와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이제는 거의 매달 콘서트를 쫓아다니는 열혈 팬이 돼버렸다.
실내악이 주는 특별한 기쁨과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두세 명 혹은 많아야 너댓 명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나와 호흡을 맞추며 엮어내는 체임버 뮤직은 교향곡처럼 웅장하고 거창하진 않지만 예쁘고 아담하고 개인적이며 특별하다.
특히 연주자들의 거친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는 친밀감은 실내악 연주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평소 들어보기 힘든 작은 작품들과 괴상한 현대음악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것도 체임버 콘서트의 장점이다. 게다가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LA 전용 연주장인 지퍼홀은 가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편안하고 산뜻하며 아담한 분위기와 훌륭한 음향효과가 갈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의 용재, 그의 비올라 소리를 바로 코앞에서 실컷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연주하는 걸 보면 눈과 귀가 어찌나 황홀한지, 비올라 소리에 넋이 나가는 한편 길고 날씬하게 관리된 스타일리시한 모습에서 그만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수퍼스타라 한번 만나보기조차 힘들다는데, 여기서는 어렵지 않게 ‘하이’도 할 수도 있고, 원하면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연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가끔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나오는 콘서트에 한인들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뮤직 디렉터인 애드리안 스펜스(Adrian Spence)도 한 번은 “그것이 알고 싶다”며 진지하게 물어온 적이 있다.
리처드가 한국서는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여기서는 왜 아무도 찾지 않는 거냐고.(‘아무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거 참 대답할 말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나도 언제나 그것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연주회에서는 슈만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눈물이 다 날 뻔했다. 오랜만에 용재의 솔로가 피아노 선율과 함께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데 둘러보니 우리 일행을 빼고는 한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간 프로그램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앞으로의 프로그램이나 잘 살피는 것이 좋겠다. 매년 9월에 시즌을 시작, 다음해 5월까지 8회의 콘서트를 여는 카메라타 퍼시피카는 이번 시즌에 3, 4, 5월의 3개 프로그램을 남겨두고 있다. 3월에는 용재와 함께 마림바 연주자 정지혜가 출연하고, 4월에 정지혜, 5월에 용재가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정지혜는 2년 전 본보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 바 있는 한인 최고의 마림바 연주자로, 캔사스 대학 부교수이며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도 가르치는 자랑스런 퍼쿠셔니스트다. 그동안 게스트로 카메라타 퍼시피카 연주에 초청됐던 그는 이번 시즌부터 정규멤버로 합류해 그녀만의 매력적인 타악기 연주를 들려주게 된다.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각 분야 수석 연주자들은 용재 오닐과 정지혜 외에 캐더린 레너드(바이올린), 애니 아즈나부리안(첼로), 아드리안 스펜스(플룻), 워렌 존스(피아노), 니콜라스 대니얼(오보) 등 모두 다 세계 정상급 뮤지션들이다.
■연주회 프로그램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남가주의 4개 연주장(벤추라의 템플 베스 토라, 샌마리노의 헌팅턴 라이브러리, LA 지퍼홀, 샌타바바라의 한 홀)에서 연주한다. 티켓은 1회 45달러. 시즌 티켓도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으며, 첫 구입자는 4개 콘서트를 100달러에 살 수 있다. www.cameratapacifica.org, (805)884-8410
*3월 콘서트(4~9일, LA 지퍼홀 8일 오후 8시) - 드뷔시의 플룻 독주곡 시링크스(Syrinx)에 이어 로드니 베넷의 ‘애프터 시링크스’ 3개 연작, 크세나키스의 오보와 타악기를 위한 디마덴(Xenakis: Dmaathen), 도루 다케미츠의 ‘바다를 향하여’,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를 들을 수 있다.
*4월 콘서트(10~15일, LA 지퍼홀 12일 오후 8시) - 브라이트 솅(Sheng)의 신곡(Melodies of a Flute)의 세계 초연과 함께 그의 바이얼린과 마림바를 위한 ‘핫 페퍼’가 연주되고, 이와젠(Ewazen)의 발라드 패스토랄 앤 댄스, 도흐나니(Dohnanyi)의 피아노, 클라리넷, 혼과 현악을 위한 6중주곡을 들려준다.
*5월 콘서트(10~18일, LA 지퍼홀 10일 오후 8시) - 뒤뤼플레(Durufle)의 프렐루드 레시타티프 바리에이션과 하이든의 디베르티멘토에 이어 제이크 헤기의 신곡 ‘솔리로키’의 세계 초연이 있다. 또한 모차르트의 바이얼린 소나타, 세자르 프랑크의 피아노 5중주도 연주된다.
■ 리처드 용재 오닐 인터뷰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은 오는 9월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23번째 시즌 오프닝 무대에서 유명 작곡가 후앙 루오(Huang Ruo)가 그를 위해 쓴 ‘비올라를 위한 체임버 콘첼토’를 세계 초연하게 되기 때문. 미국은 물론 한국의 음악팬들도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기다리는 이 곡은 비올라를 주인공으로 6~7개의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2년 전에도 후앙 루오의 곡을 초연한 적이 있다.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에서 60여명의 한인 후원자들 앞에서 오보이스트 니콜라스 대니얼과 함께 연주한 ‘잊혀진 책’이 그것으로, 두 사람은 이 곡을 지난해 4월 카메라타 퍼시피카 콘서트에서 다시 퍼블릭 초연한 바 있다.
“그때 한인타운에서 가진 연주회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작은 실내악 연주회를 좋아해요. ‘잊혀진 책’은 정말 훌륭한 곡이에요. 올 여름 한국서도 연주가 잡혀 있는데 그때는 독일에 있는 한국인 오보이스트 함경과 협연할 예정입니다”
용재와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인연은 USC 음대 재학생이던 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사사하던 유명한 비올라 교수 도널드 매키네스(Donald McInnes)가 카메라타의 비올라 수석 연주자여서 자주 콘서트를 보러 다녔는데 매키네스 교수가 12년간 활동해온 카메라타를 은퇴하면서 자기 자리에 용재를 추천한 것.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연주회를 너무 좋아했는데 내가 교수님이 은퇴한 자리로 들어오게 되다니 너무 기뻤죠. 교수님은 내가 줄리어드 대학원 갔을 때도 많은 걸 도와줬어요. 카네기홀 데뷔도, 애버리 피셔 그랜트상 받은 것도 다 그분 덕이죠. 지난해에 마드리드에서 런던 필과 협연할 때도 거기까지 와서 관람하셨어요. 그런 교수님은 없을 거예요”
한편 마라토너 용재 오닐은 오는 3월18일 열리는 LA 마라톤에 세 번째로 참가한다. 이번이 일곱 번째 풀 마라톤이라는 그는 기록이 3시간35분으로 거의 프로급인데, 2년반 전 처음 도전했을 때부터 4시간11분대를 뛰었다니 보통 실력이 아니다.
“미리 준비했으면 모금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늦어서 조금 아쉽네요. 한국서 조선 마라톤 뛸 때는 여러 번 펀드레이징 했거든요. 다음에 기회가 오면 LA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LA는 내게 아주 중요한 곳이에요. 가족,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LA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바쁜 연주활동으로 LA와 뉴욕,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은 갈수록 LA에서 더 많은 시간 보내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이나 뉴욕에 비해 훨씬 릴랙스한 환경이기도 하고 UCLA 교수로, 또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활동에 탄력이 붙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올 여름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6월 말 여수엑스포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앙상블 ‘디토’(DITTO) 공연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것. “오래 전부터 지휘를 하고 싶었다”는 그는 지휘는 새로운 꿈과 열정의 도전이라며 데뷔 작품은 메이슨 베이츠의 워터 심포니 초연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창단한 ‘디토’는 이번이 6번째 시즌으로 일본에도 진출, 일본 최대의 클래식 음악제인 ‘라 폴 주네’에도 참석하는 등 한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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