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산타페를 찾았던 때 멀리 산등성이에 푸른 낮달이 떠 있었다. 붉은 산과 어우러지며 신비스런 기운이 도시 전체를 감쌌다. 산타페를 여행하며 인디언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도시 가운데 매일 열리는 난전에서 푸른 토키아 목걸이도 사서 걸어보고 싶었다. 예술이 출렁거리는 거리.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낭만이 흐르는 도시. 크지도 않고 별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 같은 방문객을 반기는 매혹적인 도시였다.
그 산타페에 주소지를 둔 환자가 입원했다. 폴, 이곳에서 임시직 건설업에 종사했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엔진이 걸려 있던 오토바이가 넘어지며 오른쪽 팔을 지나 복부 위를 지나고 왼쪽 대퇴를 지난 다음에야 멈추어 섰다. 오른팔은 사고현장에서 절단 되었고 많은 양의 출혈이 있었다. 다행히 폴은 헬멧을 쓰고 있어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병원 도착 즉시 수술실로 향했고 오른쪽 팔의 절단 부위를 깨끗하게 세척해 내고 출혈이 많았던 동맥을 잡아 묶었고 복부를 열고 심한 비장 출혈을 막았다. 이어 왼쪽 대퇴 골절을 교정하였다. 16시간이라는 긴 수술 후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인공호흡기를 걸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하여 혈압 상승제와 혈액 대체제, 링거 등을 투여하는 사투는 계속 되었다. 다행히 48시간 후쯤부터 상태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이어 폴은 인공호흡기를 땔 수 있었고 약물에 의해 잠을 재웠던 상태에서 완전히 깨어날 수 있었다.
그때 폴이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오른쪽 팔이 없다는 기막힌 사실! 그는 오른 손잡이였고,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괴성 같은 울부짓음이 중환자실 복도에 가득했어도 울음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 원목은 침상 가에서 그냥 함께 있어 주기만 했다. 그리고 폴은 곧 말을 잃어갔다. 간단히 ‘예, 아니오’라는 말 말고는 누구의 말에도 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구 이곳으로 와 도와 줄 사람은 없나요."
"없어요."
"부인은요?"
"없어요."
"아이들은요?"
"없어요."
"그럼 혹 친구나 친척이라도?"
"없어요."
"전화 걸만한 곳 있으면 주세요. 내가 대신해 드릴수도 있는데."
"없어요."
똑같은 질문을 매일 한 두 번씩 시도해 보았지만 폴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폴은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음식을 거부하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를 했고, 긴 인터뷰 후에 곧 항 우울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사오일이 지나자 정신 상태는 조금씩 좋아졌고 생활의 근거지 였던 산타페로 돌아가길 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면 실낫 같은 삶의 희망도 재활 의욕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의 편리를 위해 같은 수준의 병원으로 옮겨 갈 때는 의료보험 회사에서는 그 비용을 처리해 주지 않는다. 5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구급차의 예상 비용은 7,200불! 왼쪽 다리에 힘을 줄 수 없는 환자는 침상에 누운 채로,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기구를 달고, 혹시 발생 할 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산소와 수액, 심장 모니터 등등이 준비 되 있고 간호사와 호흡기사가 함께 따라 가야 했다.
폴이 거래하는 은행의 지점에 연락을 하고 상황 설명을 하자 은행원 두 명이 환자를 방문했다. 환자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자 그 자리에서 즉시 환자가 가지고 있던 단기채를 해지해 일반 구좌로 옮겨 주었다. 언제라도 현금으로 쓸 수 있도록. 다시 구급차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현금으로 대금을 지불 한다고 하자 비용의 10퍼센트를 깎아 준단다.
폴은 떠났다. 사고가 났던 오토바이는 폐차시켰고 그가 노후에 쓰려고 저축했던 은행의 단기채도 비용으로 다 써 버렸다. 일을 마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밀린 임금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한 듯 했다. 한쪽 팔은 잃어 버렸고 아직 다리는 쓸 수가 없다. 상처가 아물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생활을 위해 왔던 곳에서 더 많은 짐만 지고 떠나가는 그를 보며, 산타페 그 신비로운 낭만의 도시에서 그가 무엇이라도 잡고 일어서 다시 삶의 의욕을 찾기를 기도해본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또 봄은 오고 있을 거라고, 성급한 내 마음도 합하여, 포근해 보이는 눈 솜이불을 덮어 떠나보낸다. <졸저,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중에서 일부>
jhonjieun@hotmail.com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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