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에야 겨우살이를 알게 되었다. 산책길에서나 동네의 밤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밑을 지나치며 어쩌다 높은 나무 우듬지를 쳐다 본다. 잎을 다 떨어뜨린 앙상한 마른 가지의 군데군데 꼭 큰 새둥지 같이 둥글게 자리 잡은 형체를 본다. 그럴 때마다 새집이 아니면 다람쥐 같이 작은 동물의 안식처겠지 하는 내 생각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내 왔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고 겨우살이과의 ‘참나무 겨우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짐작으로 지름이 50cm에서 1m에 가까운 것도 있다.
이것들이 다른 생물에 기생하며, 그로부터 양분을 섭취하고 사는 동물 같이 이 겨우살이도 나무 가지에 뿌리를 박고 기생하며 산다는 것이다. 나무마다 잎을 다 떨어뜨린 채 홀딱 벗고 추위에 떨며 저희의 양식마저 부족할 지경인데 이들 고약한 겨우살이가 염치도 없이 야멸치게 남의 양식을 가로채 먹고 튼튼하게 잘 살고 있다. 본체 나무들은 백설을 뒤집어쓰고 찬바람에 떨고 있는데 겨우살이는 오히려 눈을 솜이불 같이 뒤집어쓰고 새둥지 같이 위장하고 파란 새싹을 틔우며 왕성하게 겨울을 나며 3월에는 꽃을 피우며, 10월에는 연한 노란색의 둥근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정말 얄밉고 괘씸한 생각이 든다. 크거나 작거나 모든 식물들이 흙에 뿌리를 박고 나름대로 능력껏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에게 기대 불로장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부류는 그 사회에서 지탄받고 욕을 먹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람 사는 사회에도 겨우살이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음을 본다. 나만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들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부류의 올곧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나를 위하여 주는 것 같이 생각했는데 나중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듯 섭섭함을 드러내게 하는 일들이 더러 있다. 좋은 이웃만 사귈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로 좋은 감정으로 사귀다 보면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벗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전한 길도 위험한 사람과 같이 가면 위험하고, 위험한 길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가면 안전하다. 안전하고 위험한 건 언제나 길보다 사람이란 말이 있다. 내 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믿는다. 좋은 이웃은 그 존재만으로 내게 기쁨이 되며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손을 잡아주는 참된 벗이 되어주는 것이다.
내 이웃에 사는 마음씨 곱고 올곧은 내 친구의 당한 일을 생각하며 겨우살이 같은 인간 기생충을 야릇한 감정으로 멸시해 본다.
지난 일이다. 내 이웃에 약국을 하는 P라는 친구가 있었다. 산동네 골목 입구에 있는 작은 2층집 영세 약국이었다. 내외가 어린 것들을 데리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처가 쪽으로 먼 친척뻘이며 친구 같이 지내는 K라는 어줍지 않은 화가라는 친구가 있었다. 약국을 하는 친구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틈나는 대로 지하에 있는 작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K라는 친구가 자주 P의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들랑날랑했다. 그러자니 끼니때가 되면 자연히 한 식탁에서 먹게 되며 군식구가 되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거의 기식하다시피 했다. 그래도 성품 고운 P는 별로 실은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내심 여간 불편하고 못 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힘들어하는 것을 옆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기를 2, 3년을 K는 낯가죽 두껍게 눈치 없이 들락거리다가 언젠가 우리 동네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 P의 얼굴에 걱정과 낙담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P가 자기 아내와 의논도 하지 않고 K의 강청을 거절하지 못해 서준 재정보증으로 인해서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보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가정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타격을 당했다. 다행히 나중에 P의 아내가 나서서 얼마만의 손실은 회복했다고 했다. 나만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예사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요즘 같이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큰 게 아니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게 은근히 무형적 피해를 남에게 끼치는, 겨우살이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나도 남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다. 겨우살이 같이 넝쿨 같은 기생살이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가련한 인생살이가 되지 않기를 혼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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