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에 영감을 제공한다는 뮤즈, 특히 음악의 신은 어떤 모습일까? 남성일까, 여성일까? 푸른 색을 띠고 있을까? 붉은 색을 띠고 있을까? 음악은 과연 어떤 별에서… 어떤 신에서부터 찾아오는 것일까? 음악은 잡히지도, 볼 수도 없는 것이기에 이같은 상상은 누구나 가져볼 수 있다. 희랍의 신화에 보면 ‘박커스’(디오니소스)나 ‘뮤즈’처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뮤즈는 제우스와 기억을 관장하는 무네모시네(여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9자매 Musai를 가르키는 말이라고 한다.
무사이는 음악 뿐 아니라 시, 문예, 천문, 수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영감을 주는 신들을 말하기도 하는데, 왜 희랍에서는 예술적 재능을 기억의 신에서 부터 유래됐다고 생각했을까? ‘천재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의 의문에서 그리스인들은 천재란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전생을 볼 수 있는 기억력… 선험적 영감을 찾아내는 기억력…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남들은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 그런 초인적인 감성(영감)을 가진 자들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 과연 누가 뮤즈의 축복을 받은 자들일까?
로시니는 ‘윌리암 텔 서곡’을 쓴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로시니를 ‘윌리암 텔’의 수준에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로시니는 요즘에야 이태리가 낳은 벨칸토(시대) 작곡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살아 생전에는 베토벤을 능가하는 유럽 최고의 작곡가였다. 베토벤 시대에 베토벤과 견줄 있는 인물이 탄생했다는 것도 기적이었지만, 이 특이한 작곡가는 베토벤이 잡고 있던 모든 유럽의 귀들을 자기 편으로 돌려버린,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 괴짜 작곡가 중의 한 명이었다. 베토벤조차도 로시니가 등장하자 ‘자신의 팬들이 잠시 (로시니쪽)으로 나들이 갔다’고 일시적인 패배를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표현은 베토벤과 독일쪽에서의 거드름이었고, 실제로 베토벤을 떠난 음악팬들이 다시 베토벤쪽으로 돌아갔는지는 매우 의문시된다. 그러면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로시니에게 그처럼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로시니가 철저하게 베토벤과는 반대편에 섰던 작곡가였기 때문이었다. 로시니는 우선 비극과 희극의 차이에서부터 베토벤과 달랐다. 베토벤이 운명교향곡 등 비극적인 작곡가였다면 로시니는 밝고 해학적인 오페라 작곡가였다. 치열했던 베토벤과는 달리 로시니의 오페라들은 자연스럽고도 명쾌했다. ‘합창’(교향곡)을 30년에 걸쳐 쓸 만큼 신중했던 베토벤에 비해 로시니는 초 스피드로 음악을 써나갔던, 즉흥주의자였다.(참고로 로시니의 작곡 필기 속도는 거의 초인적이었다고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생 작품을 써간 베토벤과는 달리 로시니는 철저히 영감에 의존, 20, 30대에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작품을 써가다가 37세를 끝으로 어느날 갑자기 오페라 작곡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이것은 여지껏 음악사에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로 남아있는데, 아마도 로시니에게 머물러 있던 뮤즈가 어느날 갑자기 로시니의 영혼에서 떠나가 버렸는지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누구나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수려하고도 발랄한 멜로디… 톡톡튀는 해학적 감각… 그것은 사람의 것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음악을 위해 태어난, 뮤즈의 무언가가 있었는데 로시니를 필두로 이태리는 비로소 벨리니, 도니젯티, 베르디 등을 차례로 탄생시키며 세계 음악계를 독일과 이태리로 양분시키는, 본격적인 이태리 시대를 열게되었다. 이로서 독일은 로시니로 인해 긴급 비상이 걸렸고, 특히 슈만 등은 로시니를 형편없는 기교주의, 경박한 음악가라고 철저히 폄하했다.
아무튼 괴짜였던 로시니는 어느날 갑자기 음악을 때려치우고 먹는 일로 돌아섰는데 그것도 이만저만 게걸스럽게 먹는 대식가로 변한게 아니었다고 한다. 이 위대한 음악가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말로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속물 근성이 드러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악신(樂神)에 씌여져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와 미친 듯이 밥을 먹다가 죽은 경우라고나할까? 아무튼 음악사에서 로시니만큼 극단적인 논쟁과 수수께끼를 남긴 음악가도 드물었는데, 그는 과연 뮤즈의 현신이었을까, 아니면 경박한 재주꾼에 불과했을까? 도도히 흐르는 역사가 대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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