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 가난하던 때였다지만 1954년부터 1961년까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서울에서의 내 생활은 집 없는 설움의 연속이었다. 얼추 손꼽아 보아도 이사를 일곱 여덟 번 했으니까 그 흔한 전세도 아닌 방 하나 아니면 겨우 방 두 개짜리의 사글세 신세였었다. 아내와 열애 중 셋집으로는 죽어도 시집을 못 오겠다는 그의 주장에 혹해서 당시로서는 시내버스도 없었던 수유리의 국민주택 7평반짜리를 계약한 게 첫 집이었으니까 그때서야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면 할 수 없이 딴 데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난을 간신히 면한 셈이었다. 갑자기 사글세 생각이 나게 된 것은 뉴욕에서의 월세 통제를 둘러싼 미 연방대법원의 사건에 대해 읽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월세 통제란 무엇인가. 월세는 시장의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계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정부기관, 주로 시정부가 개입해서 건물주에게 월세를 시장 가격의 몇 십 %만 받으라는 것이 월세 통제 제도이다. 그런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건축이 중단되다시피 되어 참전 군인들이 귀환해서 방을 얻기 어려웠던 때에 즉 긴급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다. 뉴욕의 경우 임대 아파트의 반가량이나 되는 거의 100만에 가까운 아파트들이 월세 통제 아래 있어 세입자들은 물론 좋을 수밖에 없고 건물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일 것이다.
제임스 하몬 부부도 울상을 짓는 뉴욕의 건물주다. 그들이 1949년에 맨해튼 5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바 있었는데 6개 아파트 중 3개는 월세 통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세 통제가 긴급 상황에서 참전 군인들이나 빈곤층 주민들을 돕자는 법의 근본 목적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하몬 부부는 법정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1949년부터 월세 통제로 시중 가격보다 40% 싼 사글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첫 모순이다. 하몬 부부의 세입자 중 하나는 롱아일랜드에 주택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게다가 보통 아파트나 주택 리스는 1년이건 2년이건 기간이 정해져 있고 또 쌍방이 조건에 합의해야 갱신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월세 통제제 아래에 있는 세입자들은 영원히 리스 권을 즐길 수 있단다. 즉 자식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2년 동안 같이 산 친구에게 조차 그럴 수 있다니까 건물주 하몬 부부가 죽더라도 그의 후손들마저 세입자들을 상전으로(?) 모셔야 될 판이다.
“당신 자신을 우리 입장에 넣어 보세요. 당신의 집에 침실이 하나 비어 있는데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그것을 빌려주라고 하는 것도 부족해서 일생동안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우리 처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하몬의 불평이 헛소리가 아니다. 하몬은 우선 뉴욕의 월세 지침 위원장에 대한 고소를 시작했다. 뉴욕의 월세 통제법이 자기 재산의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연방 헌법 개정 제5조의 누구도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생명, 자유와 재산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보장을 어긴다는 것이 고소의 이유였다. 제1심에서 패소하자 하몬은 제2순회구 연방공소법원에 항소했지만 공소법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건이라고 기각해버린다.
그러자 태평양 법재단이란 공익 로펌이 하몬 대 마커스 사건을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방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들 중에는 꼭 대법원이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건 이송명령서(Certiorari) 청원을 통해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도 댈 필요가 없이 명령서 발부를 거절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따라서 하몬 부부의 상고 청원서도 그렇게 기각될 수도 있다.
설령 대법원이 하몬 부부의 상고를 허락한다 해도 물론 변호사들끼리의 설전과 법률 이론과 판례들의 논문만으로 가부간 결정이 나기 때문에 하몬 부부는 한마디도 못하고 상고인석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05년도의 켈로 사건 판례 때문에 그들이 질 가능성도 크다. 그 사건에서 연방 대법원은 각급 정부의 공공 목적을 위한 강제 수용권은 어떤 도시 구역의 재개발에 있어서 워낙 토지 주인 보다 더 많이 세금을 낼 수 있는 계획을 가진 제3자에게 그 토지를 팔게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례는 아무리 그릇된 것이라고 해도 바뀌는 데는 몇 예외를 제하고 상당한 세월이 걸린다. 따라서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백악관과 상원에서의 석권을 중시하는 이유가 대통령의 대법원 판사 임명권과 상원의 인준권이 미국 조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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