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야말로 어쩌면 권력의 의지가 낳은, 불행한(?) 역사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인간 속에 잠재한 ‘권력의 의지’를 부정하지 않는한 인생은 누구나 권력의 해바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 역시 권력에 대해선 단순한 해바라기셨다. 아버지의 영웅은 늘 박정희, 대원군같은 권력가였다. 한 명은 혁명가였고 다른 한 명은 몰락한 왕족으로서, 권력의 꿈을 실현한 풍운아였다. 어린시절, 5-6권짜리 분량의 ‘대원군’을 꺼내보곤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특히 ‘대원군’에 대해 그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전주 李씨’의 후예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 당신께서 ‘전주 李’씨라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셨는데, 이곳에 와서도 ‘李’자가 새겨진 배지를 달고 종친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곤 하셨다. 특히 몰락한 왕족으로서, 대원군이 되어 경복궁을 복원하고, 왕권을 공고히 다진 대원군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아버지뿐아니라 전주이씨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보았을… ‘황제’의 로망은 아니었을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시아를 벗어나서는 가장 크다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곳이다. 간혹 그곳에 갈때면 나름대로 중국의 분위기를 느껴보겠다는 생각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코를 벌름거린다든지 이곳저곳을 유난히 기웃거리곤 한다. 그러나 사람들로 붐비고, 동양적인 분위기로 친근하긴 하지만 중국의 실체를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기도 하다. 번잡한 상점들만 즐비할 뿐… 그곳은 중국의 그 무엇도 없는… 그저 상자 속의 중국일 뿐이곤 하였다. 그러나 가끔 그곳의 거리를 걷다보면 중국인이 타는 얼후(해금)나 비파 등의 악기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비록 구걸을 위한 연주였는지는 모르지만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몸 속에서 흐르고 있는 동양에 대한 동경이라고나할까, 중국적인 것에 심취해 잠시나마 몽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한다. 중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과연 어떤 것일까?
동양음악(중국포함)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감성의 따스함에 있다할 것이다. 다소 개성이 없고 대동소이함은 있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음악적 흥이 녹아 있다. 즉 그것은 삶에서 부정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인간적인 욕구라 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음악이라고해서 다를 것도 없겠지만 아무튼 중국음악이 주는 동경의 달콤함이라고나할까, 꿈꾸는 듯한 서정적인 가락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음악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일본인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했지만 중국 음악의 장점을 집대성해 놓은 듯, 진한 풍류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쓴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를 영화한 작품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서태후에 의해 왕좌에 오르는 어린 푸이의 모습일 것이다. 화려한 자금성… 서태후가 누운 침상은 으리으리했지만 그녀의 죽음은 어찌그리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지… 그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기만 한 마지막 황제 푸이… 비록 현실에서는 권좌를 잃고 좌절을 겪게 되지만 죽는 순간만큼은 미련도 후회도 없이 그저 빈손으로 편안하게 가지는 않았을까? 일국의 황제로서 그리고 또한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 극과 극을 모두 경험했을 마지막 황제가 느꼈던 권력의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1988년에 개봉했던 영화 ‘마지막 황제’는 그해 아카데미상 9개부문을 휩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작품이었다. 특히 사카모토가 작곡한 음악이 압도적이었는데, 외국에 차려진 차이나타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뻔한 영화를 살려준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사카모토의 주제곡들이다. 이 작품은 그해 아카데미 부문 음악상을 수상했는데, 사카모토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려준 작품이다. 특히 서막에 울리는 주제 선율을 듣고 있으면 누구나 중국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갑자기 16세 중국소년이 되어 버린 착각이라고나할까. 무릉도원의 신비… 그 동경을 일으키는 색다른 맛이야말로 늘 다시한번 듣고 싶은, 꿈꾸는 흥취의 ‘마지막 황제’만의 독특한 맛이 아닐 수 없다.
* 마지막황제 주제곡 : http://blog.daum.net/sfmusic 에서 만날 수 있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