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한다. 그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수많은 인명이 날마다 희생되고 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류학살. 그 만행을 막아야 한다. 유엔이 제재안 표결에 들어갔다. 그러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국이 동조했다. 그 날이 2012년 2월4일이다.
‘Die Hard’이었던가. 한 영화 제목이 떠올려졌다. 인명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 자국의 이해만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서방의 제의에는 무조건 반대다. 러시아와 중국, 이 두 체제에는 어쩌면 그런 DNA가 흐르고 있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그 후폭풍이 여간 거센 게 아니다. 러시아 대사관이 습격을 당한다. 중국 국기가 불살라진다. 아랍의 여론은 반(反)러시아, 반 중국으로 돌아섰다. 냉전시대도 아니다. 그런데 왜 거부권을 행사했을까.
중국이 민주국가라면 외교정책이 달라질까. 중국 전문가들에게 흔히 던져지는 질문이다.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 편에서의 진단이다. 국가는 그 체제와 상관없이 항상 파워와 안보를 추구한다. 때문에 민주화가 되어도 중국의 외교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내적으로 어떤 체제인가에 따라 한 국가의 외교정책은 달라진다. 다른 편의 시각이다. 민주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는 전혀 다른 렌즈를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외교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체제의 경우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는 같이 간다.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권위주의 체제의 경우 집권세력은 항상 국가안보 보다 정권안보를 우선시 한다.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은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고 집권세력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한 케이스가 중국 공산당 정권의 북한 감싸기다. 북한은 예측 불가능의 불안정한 체제다. 그 체제가 핵무장을 했다. 게다가 걸핏하면 불장난이다. 그 북한이 중국의 국가안보이해에 플러스적인 요소가 될까. 답은 결코 ‘아니다’다.
그런데도 한사코 북한을 지원한다. 같은 공산주의 체제다. 그 공산주의 형제국가가 무너질 경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국경을 맞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공산당 체제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뭐 이런 판단에서다.
중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다. 군사적 수퍼 파워다. 단지 그래서 미국을 안보위협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전파에 선교사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미국을 위험한 국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왜 거부권을 행사했나. 앞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러시아의 국가이해를 지킨다는 명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중국의 북한 감싸고돌기와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자국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발포하는 체제를 국제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경우 인권은 국가 주권에 우선한다. 그러므로 외부세력의 개입은 정당화 된다. 리비아가 최근의 케이스다.
그런 전례가 자꾸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체첸 대학살의 얼룩진 유산을 지니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다. 티베트와 신장자치구 학살의 전과가 있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중국도 슬며시 거부권행사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의 국가적 위신은 말이 아니게 됐다. ‘범죄보다도 나쁘다’-러시아에, 또 중국에 쏟아지는 비난이다. 체제안보에만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취한 외교 드라이브다. 그러나 국가이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참담한 결과만 가져왔다. 그러면 체제안보에는 도움이 됐을까.
2012년 2월4일 정오. 모스크바 중심가 칼루슈스카야 광장.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에도 불구하고 10만이 훨씬 넘는 군중이 몰려들었다. 시위대는 크렘린 궁을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가 치켜든 배너에는 간결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무바라크, 카다피, 푸틴.”
유엔의 시리아 제재안이 러시아, 중국의 거부권행사로 부결된 바로 그날 얼어붙은 모스크바 광장은 화산폭발과도 같은 시위열기에 휩싸인 것이다. 왜 시위에 나섰나. 존엄과 정의에 대한 요구에서다.
단순히 부정선거 규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창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사람다운 취급, 무너진 정치 도덕의 회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전통과 정치적 배경이 다르다. 그러나 존엄성 요구라는 점에서, 그리고 배너의 캐치프레이즈-“무바라크, 카다피, 푸틴.”-가 암시하듯이 그 시위는 카이로에서의 시위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모스크바 시위는 하나의 세계화적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벌써부터 나오는 일부의 주장은 세계화 흐름에 저항하려는 푸틴, 그 ‘푸틴시대 러시아’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따르는 전망은 러시아에서 벨로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크스탄 등지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형 체제 하트랜드에서 오렌지혁명의 도미노 현상이 재현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감이 엄습한다. 올해의 입춘(立春) 2012년 2월4일은 ‘아랍의 봄’ 이어 ‘러시아의 봄’이 잉태된 날이 될 것이라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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