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최윤희 행복전도사의 죽음을 한국 뉴스에서 보고 참 많이 놀랐었다. 조금 분노했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모르겠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했을까? 그것도 동반 자살이라는. 참으로 모질고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재담을 통해 희망을 얻고 행복을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 같기도 했다. 톡톡 튀는 순발력의 말솜씨로, 특히 주부들의 인기가 많다고 들었었는데……
머리엔 빨강과 보라색등의 블리치를 하고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솜씨는 참 대단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사는 것은 할 만한 일인 것 같고, 사는 것에 대한 희망은 먼 곳이 아니라 늘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그녀가 택한 죽음의 방법은 매스컴을 통해 보여주던 이야기와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언제부턴가 매스컴에서 보이지 않던 그녀가 실제는 고통 속의 질환인 루푸스를 앓고 있었단다.
루푸스는 면역체제 이상 질환이다. 신체의 면역체제가 어떤 것이 정상 세포이고 어떤 것이 이상 세포인지 구분하지 못하여 무작위로 공격을 하는 증상이다. 문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면역체제의 이상 질환이므로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스테로이드 제제를 써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통증이 심할 때는 진통제를 투여하는 등의 증상 완화 방법 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그의 죽음이 매스컴에서 사라질 무렵 한 환자를 만났다. 33세의 흑인여자 앤이였다. 병명은 ‘루푸스’. 호흡 곤란을 동반하고 있었다. 피부 색깔 때문에 얼굴에 난 홍반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으나 앤은 끊임없이 전신의 통증을 호소했다. 손톱 밑, 손가락 마디마디, 발가락 사이사이, 머리 속까지 아프단다. 진통제를 올리고 또 올려도 앤의 통증은 진정 되지 않았고 거의 48시간 동안 잠을 못 잤다. 나중엔 수면 부족으로 인한 정신 분열상태까지 보였다. 그때 난 앤과 앤의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앤의 엄마는 앤이 직접 작성한 유언장을 보여 주며 인공호흡기를 걸지 말 것을 부탁해 왔다.
앤이 루푸스 진단을 받은 것은 10 대 후반이었을 때다. 15년 투병 생활을 해 왔으므로 앤과 그 가족들도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돼 있었던 것 같다. 앤의 표현에 의하면 통증은 예고도 없이 신체의 곳곳에 각각 다른 종류로 온단다. 무엇으로 찌르는 것 같고, 손목을 비트는 것 같고, 가슴을 누르는 것도 같고,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눈이 튀어 나 올 것 같고, 숨을 쉬면 들숨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꼽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이 갈라지는 것 같고, 음식을 삼기면 목이 타는 것처럼 아프고. 그녀가 표현하는 통증의 모양도, 그 정도도 각각 달랐다. 앤은 더 표현할 방법이 없을 뿐이라며 눈물지었다.
"이렇게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그냥 편해지고 싶어. 더 이상의 고통은 견딜 수 가 없을 것 같거든. 이젠 지쳤어. 그만, 그만 하고 싶어."
곁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병실을 나가버렸다. 정말로 이젠 그만 편안해 지고 싶다는 앤의 간절한 청에 난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따뜻한 손만 잡고 있었다.
얇은 종이에 손을 베면 그 순간의 쓰라림은 형용할 수가 없이 아프다. 또 치통이 생기면 찬물을 마실 때 그 통증이 머리 속까지 전달되며 찌릿 거린다. 어쩌다 편두통이 오면 머리를 묶고 햇빛이 가려진 방에 누워 끙끙대다가 급기야는 온갖 것을 토해 내야만 통증이 좀 사라진다. 피곤이 쌓여 혓바늘이라도 돋으면 김치 한 조각 넘기기가 힘들다. 이런 고통들이 동시에 온다고 하면, 상상해 보라 얼마나 힘들겠는가를. 이보다 더 많은 종류의 통증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면 그것도 순간이 아니라 계속 적으로 오랜 시간 밀려온다면 말이다. 앤의 고통을 덜게 하는 방법은 영원히 잠을 재우는 수 밖에 없었다. 가슴에 묻어야 하는 딸, 그 시간이 목전에 와 있음을 잘 아는 엄마는 나와 앤의 이야기 도중에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고 돌아 오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전화를 거는 내 목소리도 너무나 가라 앉았다. “주님, 저희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졸저,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중에서 일부). jhonjieun@hotmail.com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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