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공원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겨울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추위를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육체보다는 정신을 즐기는 사람들일까? 추위를 사랑하는 사람들… 어딘가 외롭고 공허해 보이지만 강인한 영혼이 느껴져 온다. 북방의 음악이 때때로 아름답게 들려오는 것은 이러한 고독이 느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울창한 숲도 아름답지만 낙엽이 져 버린 숲은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마음을 비우면 후련해 지듯 자연 속에서도 사람은 때로는 성찰… 철학을 배우곤 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주는 음악들이 있다. ‘승리의 찬가’, ‘환희의 송가’ 등… 그런데 가끔 마음을 비우게 하는 음악들도 있다. 대체로 쓸쓸하고 외로운 음악들이다. 황량한 겨울벌판… 끝없이 우울하게하고 슬프기만한데도 가슴 한 가운데를 후련하게 해 주는 음악들이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난 뒤의 평화라고나할까,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런 외로운 음악들이 좋아 질 때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북방의 음악… 특히 차이코프스키같은 음악에 심취하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북방의 나라, 매서운 툰드라의 기후가 절로 느껴지는 북극의 음악이야말로 서늘한 멜랑콜릭을 진하게 자극하는 음악들이다. 다소 감성적인 차이코프스키 등의 음악은 대중적인 요소도 다분한데 이 때문인지 그의 ‘비창’같은 작품 등은 팝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불려지기도 했다. 이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비창’을 팝으로 불렀을 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비창’에 대한 선입관은 늘 클래식보다는 팝 같다는 인상이 짙었었다. 또 ‘비창’에 대해 전해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때문에 한동안 비창을 멀리하기 조차 하였다.
백남준이란 작가가 그랬던가 ‘예술은 사기’라고… ‘비창’이야말로 매우 아름답고 감상적인 음악이었지만 형식은 도대체가… 거꾸로 된 교향곡이었다. 1악장이 2악장 같은가 하면, 3악장이 4악장같기도 하고 앞 뒤가 엉망, 뒤죽박죽이 된 작품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왜 이처럼 형식이 무시된… 문제의 작품을 남길 수 밖에 없었을까?
차이코프스키는 음악 외에 소설 등으로 인간적인 면이 널리 조명된 바 있는 데, 알려졌다시피 전문가들은 우울증환자였던 작곡가가 ‘비창’을 작곡하며 자살 충동을 일으켰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것은 동성애 발각에 따른 자의내지는 강요된 자살이었다는 것이다. 명확히 공인된 사실은 없지만 아무튼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을 남기고 일주일 만에 죽음을 맞게된다. 이 드라마틱한 사실은 ‘비창’을 유명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순서도 무시된 채 엉망진창으로 헝크러져 있는 음악… 그러나 또 묘하게 아름다운 음악…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가르켜 흔히 대중주의라고 한다. 쉬운 말로 음악적 포퓰리즘이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다. ‘팝’과 ‘고전’(음악)의 차이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의 억제일 것이다. 무한대의 감정분출이 당장에는 듣기 좋을지몰라도 그것은 곧 감상주의에 그치고 만다. 팝의 생명이 짧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이코프스키 음악에는 팝 등과 일치하는 공감대가 있다. 그것은 고독감이다. 대중 속의 고독이라고나할까? 사람은 때로는 홀로 있을 때 보다 대중 속에 파묻혀 있을 때 더 큰 상실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왜 일까? 그것은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때로 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음악에는 이러한 내면의 단절감, 상실감 등을 어루만져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슬픈 음악일수록 더 감미롭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만큼 인간 내면의 여린 심리를 예민하게 타치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비창’이 처음 발표됐을 때 이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비창’이 너무 극단적으로 우울했기 때문이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비창’을 이해했고, 눈물을 흘리며 열광하게 되었다. 그럼으로 사람들은 ‘비창’자체보다는 차이코프스키라는 한 인간의 죽음… 그 비극(성)을 더 사랑했던 것이었다. 이 드라마같은 ‘비창’이 팝 등으로 편곡되어 대중에게 널리불려지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팝으로 부르는 ‘비창’이 때론 더욱 클래식처럼 들리는 것이 ‘비창’만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 것이다.
* 팝으로 부르는 ‘비창’ : http://blog.daum.net/sfmusic 에서 들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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