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몇마리 아직도 앙상한 사과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합창을 하고 있다. 나무 가지들은 아직 움을 트지도 않은 이른 2월이지만 나는 문득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곧 나무가지들은 움이 트고 연분홍 꽃을 피우는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이곳 캘리포니아는 2월달이면 이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겨울 추위에 꽁꽁 얼고 있지만, 이곳만은 눈부신 흰 꽃을 피워내는 배꽃을 비롯해 여러가지 색깔로 수를 놓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 봄이 온듯 기분이 상쾌해지고 있다.
겨우내 나는 창밖의 사과나무를 보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나무는 희망의 상징이고 기다림의 상징이다. 우리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다고 하나 희망이 없고 기다림이 없다면 그 인생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젊은이건 늙은이고 간에 희망과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즉 희망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과나무는 나와 인연이 깊은 나무다. 우리집이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을 때, 약 사오백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어서 봄이면 연분홍색 꽃이 만발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멀리서도 산자락에 피어있던 그 꽃들을 보며 나는 십리 길도 마다않고 달려가곤 했다. 언제나 나를 반기며 환하게 미소짓던 어머니, 그곳은 또 어머니가 항상 나를 기다리던 곳이기에 내게는 언제나 그리운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아무리 외국 땅에서 수십년을 살았다고 해도 내가 태어난 땅과 사랑했던 사람들은 잊을 길이 없다. 언젠가 TV에서 소련 연방의 어느나라를 소개하며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아리랑을 눈물을 흘리며 부르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합창을 하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왜 우리는 그 끈끈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항상 마음 속에서 한번 떠나간 사람들과 한번 살았던 땅을 잊지 못해 연연해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또 그곳을 가보면 그 땅이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낯설고 막연한 쓸쓸함과 실망만이 가슴을 치는 것일까. 세월이 너무도 흘러 그 그리운 자리엔 망각과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소멸만이 남아서 일까.
내가 대학교 삼학년이던 시절, 능금나무의 꿈이란 시로 현대문학지에 처음 추천을 받고 의기양양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연세대학의 교수로 있던 박두진씨가 나와 왕수영을 추천했다.
"내 볼이 발갛다 하여 스스로 나를 능금나무라 이름하면 나는 벌써 이만큼 자라나온 한그루 능금 나무" 시는 아마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분에 넘치게 칭찬을 들으며 등단했기 때문에 그 당시 우리들은 문학을 하는 문학도 간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명동의 갈채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그 당시 당대의 문필가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소로 우리들은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그곳으로 달려가 그분들을 만났고, 차도 얻어 마시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귀울이곤 했다. 우리들은 아직 애송이 시인 연습생이었지만 마치 유명인사들의 한패인 것처럼 호기도 부리고, 돈이 없어 차 값을 내지 못할 때면 그들 중 한 사람 앞에 차 값을 달아놓고 천연스레 도망치듯 다방을 나오기도 했다.
이제 그때 그 사람들은 거의 이 세상을 떠나고 그 갈채라는 다방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기억을 더듬으면 가난했지만 인정만은 훈훈했던 명동의 그 다방과 분위기가 생생히 생각나고 그리웁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아우성이다. 육십대는 육십 마일로, 칠십대는 칠십 마일로 달려 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얼마전 내가 사는 근처로 이사온 딸네 집에 손주들을 보러 이삼일 가고, 운동도 하고 아침마다 친구들을 만나 커피도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어느 때는 매일 아침이면 전화를 해서 내 스케줄을 체크하는 딸이 귀찮기도 하지만 귀여운 손주들을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직 주변에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가까이 살고 있어서 수시로 그들을 만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들이 있어 또 감사하다. 아직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어 살만하다
내일은 벌써 일요일이다. 수퍼볼로 온 미국이 시끄럽기도 하겠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교회를 갈 수 있다는게 또 하나의 행복이다. 작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고, 늘 넉넉한 양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목사님과 지난 수십년간 정들었던 얼굴들과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그런 기대가 없는 인생을 산다고 하면 얼마나 삭막하고 지겨울까.
오늘도 창 밖의 한그루 사과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 설레고, 그 한그루 사과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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