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뉴욕시장에 당선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내세워 길거리 또는 지하철에서의 구걸 행위, 건물 낙서, 홈리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경찰의 단속이 지나치다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경찰도시를 만드냐는 비아냥과 경찰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오랫동안 누적돼온 구걸이나 낙서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냐는 회의론도 많았다.
그러나 뉴욕시의 강경한 단속이 계속되면서 점차 시의 모습이 달라졌다. 마피아 단속 등으로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94년부터 97년까지 불과 4년 사이에 뉴욕시의 범죄율이 37% 감소했고, 살인 사건은 50%까지 감소했다.
당시에 지하철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기억난다. 말쑥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며 겁을 먹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But, It’s my money’라고 말하는 만화 포스터였다.
뉴요커들의 마음속에 있는, 내 자신과 내 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
고 싶다는 의식을 자극한 것이다.
줄리아니 시장의 이같은 정책은 사실 뉴욕시 지하철의 낙서 지우기 운동이 시발점이었다.
이 운동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 따라 범죄를 줄이기 위해 낙서를 지워야 한다는 한 대학교수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시교통국은 지하철 치안 회복을 목표로, 우선 낙서를 청소하는 운동을 벌였다. 범죄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반발도 있었지만 낙서지우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점차 지하철내의 범죄 발생률이 완만하게 하락하고, 5년이 지난 뒤에는 지하철내 중범죄가 75%나 감소했다고 한다.
이같은 성과를 만들어낸 ‘깨진 유리창 이론’은 낙서나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지난 82년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이론이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실험도 있었다. 두 대의 자동차를 세워놓고 그중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깬 상태로 놓았다. 약간의 차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문이 깨진 차량은 점차 파손되기 시작해 몇주뒤에는 완전히 고철상태가 되었다.
이 이론은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한 지역의 상가에서 1-2곳의 업소들이 문을 닫거나 비즈니스 환경을 더럽게 만들면 점차 다른 업소들도 그 영향을 받아 그 상가 전체가 지저분해지고, 황폐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빈 업소가 늘어날수록 쇠락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주택가에서 한 집이 잔디를 깎지 않는다면, 문제는 그 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의 전체 주택가격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온다.
회사나 비즈니스에서도 ‘깨진 유리창’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직원의 근무 태만을 발견하고 그대로 방치한다. 이것을 본 다른 직원들도 그 행동을 따라한다. 고객이 문제를 발견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업주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직원을 처벌하지도 않는다.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난다. 매출이 급감한다. 고객들은 다른 업소를 찾는다. 결국 그 업소는 폐업한다.’일부에서는 투명테이프를 붙여 깨진 유리창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깨진 것은 깨진 것이다. 임시방편보다는 제대로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것이 좋다.
지난 2-3년간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뉴욕과 뉴저지의 한인 밀집 상가에서도 마치 구멍이 뚫리듯 빈 상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업소들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아야할 판이라고 하소연하면서 직원수를 줄이지만, 고객들은 고객대로 ‘그 집은 서비스가 좋지 않아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업소에서는 매상이 떨어지는데 무슨 인테리어를 하겠냐며 그냥 장사를 하지만, 고객들은 그 집은 너무 지저분하다며 다른 업소를 찾아간다.
심지어 내 유리창은 별 문제가 없다고 다른 업소의 일에 수수방관하지만 결국 주변의 유리창이 깨지면 내 유리창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상품이나 서비스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깨진 유리창의 비유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방치되기 쉬운 작은 문제점을 잡아내고, 빨리 고치면 더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주위에 깨진 유리창이 있다면 가능한 빨리 치우자.
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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