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를 특정 당파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맘대로 정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의 유래는 18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매사추세츠의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E. Gerry)가 자신이 속했던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분할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샐러맨더(도롱뇽) 같다며 반대파에서 이를 게리맨더라고 비아냥거린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LA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의회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게리멘더링 논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난 달 LA시 선거구 재조정위원회가 조정 방안 초안을 내놓자 각 커뮤니티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웨스트 LA 지역에서는 현직 시의원이 재조정 초안에 대해 게리멘더링의 전형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LA 한인사회의 중심인 한인타운 지역의 경우는 현재 4개로 쪼개져 있는 구획을 하나로 통합해 달라는 커뮤니티의 단일화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의 타운 분리 구도가 그대로인 모양으로 재조정안이 그려져 한인 커뮤니티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현재 한인타운의 남쪽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10지구의 경계가 현재의 분리선인 6가에서 3가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대로 구획이 확정되면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시의원은 여전히 여러 명인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한인 단체들과 한인 주민들이 나서 단일화 서명운동을 펼치고 공청회에 직접 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한인사회의 요구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선거구 재조정위원회가 최종안을 마련하기까지는 한 달 여의 시간이 남아 있어 한인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관철될 지는 좀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러나 한인타운 선거구 재조정을 둘러싼 역학구도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일단 정치인들이 직접 지역구 모양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것을 막아 선거구 구획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한다는 취지로 민간인들로 이뤄진 선거구 재조정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과연 현직 의원들의 강력한 입김을 배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재조정위원들이 시장과 시의원 등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정치인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또 위원회가 최종으로 만든 재조정안은 결국 시의회의 논의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입맛에 따라 재단될 가능성도 크다.
또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논의에서 ‘한인타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도 핵심 이슈다. 현재 한인 단체들은 남북으로 올림픽에서 멜로즈, 동서로 버몬트에서 웨스턴을 경계로 하는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구획을 단일 선거구의 기준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한인타운 범위에 대한 생각이 동일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같은 문제의 뿌리는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인사회 일각에서 ‘코리아타운 공식 구획 설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인타운을 ‘크랜셔-멜로즈-후버-피코’로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일부 타 커뮤니티의 반발과 정치인들의 압력에 밀리면서 ‘3가-버몬트-올림픽-웨스턴’을 경계로 대폭 축소된 구획이 공식화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결국 반쪽짜리 한인타운의 경계가 ‘낙인’이 찍혀버린 셈이 됐고, 이것이 결국 한인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넒은 의미의 한인타운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10지구에서 지명된 선거구 재조정위원은 공청회에서 현재 LA시가 지정한 공식 코리아타운 구역으로만 따진다면 모두 10지구에 포함됐으니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전략적 실패가 이제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정치인들이 쫓는 것은 궁극적으로 ‘돈’과 ‘표’다.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요구는 결국 한인 유권자들의 ‘표’가 좀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로 묶자는 것이다. 결국은 보팅 파워가 관건이다. 한인사회가 적극적인 투표 참여 등을 포함하는 정치력 확대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치밀한 전략적 목표 설정 및 대응을 해야만 이번 선거구 단일화 싸움이 공허한 노력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종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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