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는 누구일까? 항상 고민되는 문제다. 현상보다는 본질에 천착해야 하는 종교지도자이기에 더 그렇다. 또 실제로, 내 안에 두 개의 나가 존재하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신문에다 칼럼을 쓴다. 제 아무리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해도,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함으로써 글로 ‘표면화된 나’ 뒤에 ‘이면의 나’가 절묘하게 숨어있음을 부인키 힘들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가끔이나마 이게 ‘진짜 나’의 모습임을 발견하는 횡재도 얻는다. 하지만 다시 서글퍼지는 것은 ‘그 나’를 외부에다 함부로 표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그때의 나’는 좀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으로 비쳐졌다가는 “세상에 저 사람이 저런 사람이었어” 할 것 같아서다. 특히 가치와 윤리를 먹고 사는 목사이다 보니 그 두려움은 더 커진다.
한 지역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보다는 초청강사(guest speaker)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왜냐하면 초청 강사는 자기 자신을 적절히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길어야 3박 4일인데, 그 기간이면 자신의 장점만 골라 충분히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초청강사로 가면 ‘진짜 나’는 얼마든지 가릴 수 있고 나의 ‘건전한 자아’는 얼마든지 알릴 수 있다.
프란시스 쉐퍼라는 20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기독교 사상가가 있다. 현재까지의 나의 생각을 잘 정리시켜준 참 고마운 분이다. 그와 그의 가족은 스위스 한 지역에 작은 공동체(라브리 공동체)를 세워 거기에 방문하는 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급스런 기독교의 가치관을 소개하는 데 힘썼다. 이게 바로 그가 다른 유명인사나 초청 강사와 다른 점이다. 유명인사의 메시지는 수려하며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가 강의를 마치고 휙 떠나버리면 그의 메시지와 그의 삶이 일치하는지 남아있는 청중들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반면 쉐퍼는 그의 매일의 삶과 만남 속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있다.
지역교회 목회가 힘든 게 목회자 자신의 거침없는 노출현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노출되는 그 모습으로 매일, 매주 사람들을 만나야 할 뿐 아니라 설교까지 해야 한다. 교인들은 거기서 두 얼굴의 목회자를 접할 것이다. 설교단상의 거룩한 얼굴과 일상에서 노출되는 그의 인간적 얼굴이다. 두 개가 일치할 때는 환호할 것이나, 불일치하는 두 얼굴에서는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쉐퍼에게서 배워야 한다. 쉐퍼의 메시지가 힘이 있었던 것은 그가 현실의 압박 속에서 기독교의 고급스러움을 나누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는 지역성(locality)을 띨 수밖에 없다. 설사 이중적 자아가 노출되더라도 목회자는 교인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함께해야 한다.
그래서도 목회자가 제일 힘들어하는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아내요 자식들이다. 아내와 자식은 매일 집에서의 ‘진짜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에서, 또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패스 카드를 받지 못하는 목회자는 교회 가서도 잘할 수 없다.
얼마 전 교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매일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자신입니다. 매일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가 내 자신입니다. 내 집에 어떤 가구가 있고, 내 옷장에 어떤 옷이 있고, 깜깜한 내 다락에 무엇이 숨겨져 있느냐가 내 자신입니다. 달리 설명하려 하지 맙시다. 내 주변과 내 일상이 바로 내 자신이라는 사실, 잊지 않도록 합시다.”
‘진짜 나’는 숨기고 싶고 ‘포장된 나’는 드러내고 싶어 내 지역을 떠나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것까지 부정하진 않으련다. 가끔은 그런 때가 유익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항상 그래서는 안 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나를 나 되게 해준다. 다니고 있는 교회가 내 자신이다. 다른 교회 가면 해결될까? 글쎄, 어느 정도는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안 되면 다른 데서도 안 된다. ‘진짜 나’에 대한 발견은 나의 일상적 주변에서 거의 다 해결되는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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