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년 전 거의 무명 정치인이던 버락 오바마는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 ‘변화’와 ‘희망’을 외치며 대선 출마를 발표했다. 이곳은 1858년 에이브러험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 두 번째 취임 연설과 함께 3대 연설의 하나로 꼽히는 ‘분열된 집안’(House Divided) 연설을 한 곳이다. 링컨은 여기서 연방 상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분열된 집안은 서 있을 수 없다”(House divided cannot stand)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 “미국이 자유인과 노예로 언제까지 나뉘어져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흑인 노예를 해방한 링컨이 출마를 발표한 곳에서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오바마는 많은 미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대기업과 로비 단체가 아닌 소액 지지자들의 후원금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자 그는 캠페인 비용의 정부 지원까지 사양하는 첫 번째 후보가 된다. 그는 낙승이 예상되던 힐러리를 꺾고 민주당 지명을 따냈으며 11월 본선에서는 백악관 티켓까지 거머쥔다.
그러나 집권 4년차를 맞는 그의 성적표는 당시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주 있었던 국정연설이다. 재선을 앞둔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한 후 이룬 업적을 내세우며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설에서는 지난 3년 간 그가 이룩한 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인 국민 건강 보험 ‘오바마 케어’에 대한 이야기도, 경제 위기 속에서 당선된 자신이 어떻게 미국 경제를 살려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바마 케어는 미 국민들 사이에서 별 인기가 없는 항목이다. 거기다 작년 미국 경제는 1%대의 성장을 했는데 이는 과거 불황에서 탈출한 후 성장 속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오바마 취임 후 수 조 달러를 쏟아 부었는데도 빚만 늘어났을 뿐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가 재정 위기를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경기의 책임을 전임자에 전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업적다운 업적을 내세울 것이 없는 오바마가 들고 나온 것이 빈부격차와 공평이다. 그는 백만장자가 30% 이하의 세금을 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며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올릴 것을 주장했다. 예상대로 롬니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수천만 달러를 벌고도 15%밖에 세금을 내지 않은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 고실업과 감봉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인들은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란 계산인 모양이다.
이런 전략은 대선에서 이기는 데는 득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롬니의 세율이 낮은 것은 그의 소득이 대부분 임금이 아닌 투자 소득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투자가 활성화돼야 창업이 늘어나고 비즈니스가 새로 생겨야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리고 투자를 유도하는 최선의 방책은 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간단히 밝혀낼 수 있다. 투자 수익금의 100%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사회와 이를 100% 몰수하는 사회 둘 중 어느 곳이 경제가 발전할 것 같은가. 19세기 미국과 20세기 소련의 예는 이를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백만장자에 대한 세금을 몇%로 올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 50대 부호의 전 재산을 몰수해도 한 해 1조 달러에 달하는 연방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 복지 비용과 이익 집단에 대한 특혜로 가득 찬 세제, 그리고 낮은 초중고 교육의 질 등이다. 오바마 연설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고사하고 우려조차 찾아 볼 수 없다. ‘담대한 희망’을 외쳤던 선지자에서 부자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이를 재선에 이용하려는 싸구려 정치인으로 전락한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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