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중에 고등학교 농구 게임을 하나 구경했다. 티씨윌리암스와 웃슨 사이의 시합이었다. 두 팀은 이번 시즌 들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첫 시합에선 웃슨이 10점 차이로 이겼다고 했다. 원래 평소에 고등학교 농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두 번째 게임에 가보기로 했다. 물론 모교인 티씨윌리암스를 응원하고 예상되는 높은 수준의 게임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두 번째 게임에서도 웃슨 고교가 승리했다. 그러나 두 번의 연장전까지 들어서서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접전이었고 겨우 3점차였다.
티씨윌리암스(티씨)는 버지니아의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유일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학생들의 인종분포를 보면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2%이고 아시아계는 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흑인과 히스패닉인데 흑인 비율이 거의 40%나 된다. 이러한 인종적 분포는 내가 그 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중반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기에 티씨윌리암스와 웃슨 사이의 농구시합 시 관중석을 바라보면 따로 표지판이 없어도 어느 쪽이 티씨이고 어느 쪽이 웃슨인지 그냥 쉽게 알 수 있다.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이지만 나야 당연히 모교 응원팬들 쪽에 앉아 구경한다. 그런데 그 쪽에 앉아 있다보면 아시아인은 항상 나 혼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내 주위에 앉아 있는 팬들의 95% 이상이 흑인이다. 내가 응원석 위치를 잘못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눈짓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눈짓을 받는 것에 나는 이제 익숙해져 있다.
흑인들과 같이 앉아 시합을 구경하다 보면 백인들과 많이 다름을 느낀다. 그런데 그들 나름 악센트의 환호, 탄식, 야유, 고함 등의 응원이 상당히 구수함을 전해 준다. 나야 누가 보아도 예전에 농구를 했을 만한 체격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응원 하나 만큼은 그 누구 못지 않게 정열적으로 할 능력을 갖고 있다. 사실 티씨윌리암스 고교 재학시절부터 농구 게임을 많이 쫓아다녔기에 언제 어떻게 응원해야 적절한지의 노하우를 배운 것도 제법 오래되었다고 자부한다.
티씨에서 졸업학년 때는 남자 농구팀이 워싱턴 지역에서 시즌 내내 가장 강한 팀으로 랭크가 되었었다. 그해에는 28승 무패의 전적으로 버지니아주 챔피언이 되기도 했었다. 주 토너먼트의 결승전에서 이긴 후 시합이 열렸던 버지니아 주립 대학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내내 차 경적을 울리고 왔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 같았으면 아마 교통티켓을 여러 장 받고도 남았을 일이다.
한마음으로 같은 팀을 응원하는 데에 있어서는 인종적인 차이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흑인들 사이에 유일한 비흑인으로 있으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나의 고등학교 졸업학년 때 전승으로 시즌을 마감했던 때 얘기를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면 오히려 아주 즐거워하며 듣는다.
5피트 4인치의 단신으로도 주전 포인트 가드로 뛰면서 환상적인 드리볼을 보여주고 조금만 상대 수비가 허술하면 코트 아무데에서나 슛을 던져 성공시키곤 했던 윌리. 풋볼과 농구 둘 다 잘 했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던 앨리웁을 한 게임 내에 여러 번씩 보여주어 팬들의 욕구를 채워 주었던 거구의 프랭크 할로웨이. 그리고 단신의 슈팅 가드로 정교하고 날렵해 보이는 점프 슛의 명수였으며 시즌 후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 농구선수들을 초청해 갖는 시범경기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던 크렉 헤리스 등의 얘기를 해주면 듣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닫을 줄 모른다.
여러 다른 배경의 주민들이 잘 어울려 사는 것 같으면서도 종종 서로 격리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는 이곳 미국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화와 관심을 모을 때 우리는 자칫 서로 너무 다르다고 접근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는 큰 장벽을 넘을 수 있다. 흑인들에 둘러싸여 앉아서도 티씨 고교를 얘기하며 서로 애착을 갖고 있는 농구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응원하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배척하는 흑인 응원자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리가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웃이 있을 때 그들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자세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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