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주세요
내 눈을 드립니다
평생에 한번도 노을 지는 것을 보지 못한 당신
엄마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알지 못한 작은 아기
내 눈을 빌려 세상을 보세요
일상처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누군가의 심장만 기다리는 당신
내 튼튼한 심장을 드립니다
내 뜨거운 피는
혹, 자동차 사고를 낸 사춘기 청년이 피를 흘리고 있다면 그에게 주세요
훗날 그가 손자들의 재롱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내 신장은
평생 기계에 의존해 매주 노폐물을 제거해야 하는 사람에게 주세요
내 뼈와 신경조직과 단단한 근육은
선천적으로 기형인 어린아이들에게 주세요
아이들이 걸을 수 있게
내 뇌는
한 부분씩 잘게 나누세요
말을 못하는 소년에게는 언어의 뇌를
듣지 못하는 소녀에게는 청력의 뇌를 주세요.
소년이 자신 있게 소리 칠 수 있도록
소녀가 창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영혼은
잠시 나마 내게 生을 허락하신 나의 신, 당신께 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기억 하신다면
따뜻한 말로 ‘내게 꼭 필요했던 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세요
.
이렇게 해 주신다면 난 당신들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입니다.
장의사에서 전해 온 엽서의 앞면에는 공군 조종복을 입은 마크의 사진이, 뒷면에는 그의 시가 적혀 있다. 시는 그의 자살 노트였고 마지막 유서였다.
당시마크는 공사 4학년 이었다. 조종 특기를 가진 유능한 학생이었고, 이제 막 소위 계급장을 달아 부대 배속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장래가 촉망되고 똑똑한 청년, 마크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일기에 의하면 확실한 죽음을 위해 미리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마크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약을 복용하며 증상이 좋아져 다들 별 걱정을 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었고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사전 계획을 철저히 했던 것 같다.
엽서의 사진에서는 마크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미소 뒤에 숨겨져 있던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우울증은 물론 정신 질환 중의 하나이지만 신체, 특히 뇌 안의 화학적인 리듬이 깨어지면 생길 수도 있는 기질적 질환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하나의 생각에만 빠지게 하는 어떤 물질이 뇌의 기능 중 한 부분에 도착되어 그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그물질이 무엇인지, 어떤 기전으로 영향을 주는지 아직 확실한 이론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세라토닌 이라고 하는 행복감을 조절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어 항우울제 등이 대부분 세라토닌을 조절하는 약물들로 되어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쇠고기, 닭고기에는 세라토닌이 풍부하여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기 위한 식단에 적극 활용 된다. 그런데 마크는 채식주의자였다. 물론 이런 것들은 아직 확립된 이론은 아니다. 다만 우울증 성향 환자들의 정황들로 보았을 때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가설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되었거나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이다. 환자 스스로가 병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때만 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마크는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했고, 최고로 어렵다는 파일럿 과정을 수료하며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너무나 컸던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기엔 자신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고, 어쩌면 완벽한 신체와 정신을 요구하는 사관 학교 라는 엄격한학제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했던 높은 벽은 아니었을까.
그의 소원대로 마크는 하나도 남김없이 주고 떠났다. 홀연히 떠난 그였지만 그를 통해 7명이나 되는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그리고 장의사가 보내온 엽서 속에서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잘 다녀갑니다. 길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만 편안합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나는 영원히 삽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마크가 선택한 죽음의 방법에는 화가 났지만 그 뒤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좀 달랐다.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람도 있어 장기를 기다리는 이들은 희망의 싹을 나무기둥에 숨긴 채 민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월동을 하나보다. 봄 잎은 작지만 푸르게 나오겠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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