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독수리(vulture)는 생긴 것부터 흉물스럽다. 거기다 자기가 직접 사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먹다 버린 시체를 파먹고 산다. 이들이 한 번 몰려들면 어떤 동물이건 순식간에 하얀 뼈다귀로 변하고 만다. ‘대자연의 청소부’란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인기는 바닥이지만 이들은 자연이 청결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이 없다면 시체는 썩어 온갖 질병의 온상으로 변하게 된다. 이들 청소부 덕에 다른 동물들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이들 독수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대머리 독수리 자본가’(vulture capitalist)라고 비난 받는 기업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망해가는 기업을 싸게 매수해 군더더기를 제거하거나 새로운 경영 전략으로 되살린 후 비싼 가격으로 팔아 돈을 번다. 때로는 이렇게 산 기업을 가치 있는 부분만 분할해 팔기도 한다.
죽어가는 기업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구조 조정으로 해고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이 볼 때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떼돈을 번 기업 사냥꾼들은 악덕 자본가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회사가 망해 더 많은 실직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아무리 얘기해 봐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공화당 예선은 예상을 뒤엎고 깅리치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이오와에서 이긴 줄 알았다가 재검표 결과 2위로 처진 롬니로서는 불과 며칠 사이에 2연타를 맞은 셈이다. 이달 말 플로리다에서 있을 공화당 예선에서도 패할 경우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이 유력시되던 롬니는 정치 생명이 끝날 지도 모를 위기에 놓이게 된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페리와 깅리치가 베인 캐피털을 운영하며 기업 사냥꾼 노릇을 했던 롬니를 ‘대머리 독수리 자본가’로 부르며 맹공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 세금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압박을 받고 롬니가 소득의 15%만 세금으로 냈다고 실토한 것이 주요 패인의 하나로 분석된다. 억만장자 롬니가 보통 월급쟁이보다 훨씬 적은 세율을 적용받았다는 것이 요즘 한창 유행인 1% 특권층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으며 이것이 유권자들의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다.
예선 이틀 전 깅리치의 전 부인이 그가 아내와 함께 공개적으로 애인을 두고 사는 ‘열린 결혼’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고 폭로했지만 깅리치 지지도를 오히려 높이는 결과만 가져왔다.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유권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으니 11월 본선에서 오바마가 이 점을 물고 늘어지면 롬니로서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롬니의 세율이 낮은 것은 그의 소득 대부분이 15% 세율을 적용받는 배당금과 자본 소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배당과 자본 소득에 대한 세율이 낮은 것은 이 돈이 기업이 이미 35%에 달하는 소득세를 내고 남은 돈을 준 것이기에 이중 과세 방지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런 사실 또한 아무리 해명을 해봐야 장기 불황으로 인한 실업과 감봉에 시달리고 있는 유권자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을 것 같다.
롬니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런 문제가 공격받을 때마다 침묵과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예선 결과는 그런 식으로는 대선 승리는 물론이고 당내 지명도 받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가 지금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장 경제 체제에서 베인 캐피털과 같은 펀드의 역할이 왜 필요하고 세율을 낮추는 것이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가를 레이건 식으로 당당하게 설명해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80년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공화당 대선 지명자를 잘못 뽑은 적이 없다. 이곳에서 이기면 대선 후보가 되고 지면 되지 못했다. 롬니가 과연 이 패턴을 깰 수 있을지, 싱겁게 끝날 것 같던 대선 레이스가 다시 재미있게 돼 가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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