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없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LA에는 말러 열풍이 불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연일 말러가 화제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말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다행히도(?) 말러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사실 잘 몰라서, 그런데 지금 ‘왜 말러인가?’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말러를 논하는 것이다.
두다멜과 LA필하모닉이 지난 주 닻을 올린 ‘말러 프로젝트’는 LA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수많은 지휘자가 말러의 9개 교향곡을 완주하는 ‘말러 사이클’에 도전해왔지만 31세의 젊은 지휘자가 전곡 연주를 3주 만에, 그것도 암보지휘로 마치는 일은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말러리아’는 말러라는 작곡가와 음악에 감염된 열병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린 사람을 ‘말러리안’이라고 한다. 말러리아는 말라리아와는 달리 한번 걸리면 치유 불가능하므로 말러리안은 불치병 환자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기 동안 거의 잊혀졌던 작곡가가 부활해 이렇게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린 일은 찾아보기 힘들고, 어떤 작곡가도 그의 이름이 병명이 된 예는 없다. 150년전 태어나 100년전 죽은 구스타프 말러가 베토벤을 밀어내고 21세기 현대인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유, 들으면 들을수록 더 빠져들게 되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말러 교향곡을 듣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스토리는 아마 2번 ‘부활’만 지휘하는 길버트 캐플란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23세 때인 1965년 카네기홀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2번 교향곡을 처음 듣고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터 언젠가 이 곡을 직접 지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 캐플란은 지구상에서 2번이 연주되는 곳은 모두 좇아다녔고 이 교향곡의 모든 음반과 말러의 친필악보를 구입해 연구하는 한편 전세계에 흩어진 말러 자료들을 모아들였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월스트릿의 재정전문가이며 유력 경제전문지의 발행인으로 성공한 그는 정말로 지휘 공부를 시작한다. 줄리어드 졸업생에게 개인레슨을 받는 한편 게오르그 솔티 등 유명한 마에스트로들에게 세계재정에 관한 가십을 제공하는 대가로 지휘를 사사한 그는 드디어 1982년 애버리 피셔홀에서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생애 첫 말러 부활교향곡 지휘했다.
그의 지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호응을 받았으며 그가 1987년 런던 심포니와 녹음한 음반은 그해 뉴욕타임스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면서 18만장이 팔려나가 지금까지 나온 말러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렸다. 또 비엔나 필을 지휘해서 2002년 내놓은 두 번째 음반은 기존 악보의 오류를 400군데 이상 바로잡은 결정판으로 연주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 전세계에서 지휘 요청이 쏟아지면서 50여개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그는 한국에서도 2005년 성남아트센터의 개막 기념공연에 초청돼 KBS교향악단과 2번을 연주했다.
이번 두다멜의 ‘말러 프로젝트’에서 2번은 22일 단 한차례 시몬 볼리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데, 공연 한시간전 열리는 프리 콘서트에 길버트 캐플란이 강사로 초청돼 해설한다.
“말러를 어떻게 시작해야 되죠?”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답이 있을 리 없다. 무조건 많이 들어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작품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마다 성격과 취향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래도 말러 입문을 위해 굳이 추천하라고 한다면 우선 2번과 5번을 권하고 싶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번뇌하고 있다면 1번이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별 문제없이 행복한 시기를 살고 있다면 3번이나 4번이 아름다울 것이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6번 ‘비극적’에서 위로와 격려를, 모험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7번 ‘밤의 음악’을, 우울증에 빠져있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은 9번과 10번을, 그리고 천상의 목소리로 ‘창조주의 성령’을 듣고 싶은 사람은 8번 ‘천인교향곡’을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한 평생을 말러 연구에 바쳐온 노만 레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말러의 작품 속 어딘가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과 하나 될 수 있게 하는 틈새의 빛이 존재한다. 바로 그 빛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말러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는 곧 당신만을 위한 피난처가 된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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