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첫 프라이머리, 10일의 뉴햄프셔 승부는 개표시작과 거의 동시에 판가름 났다. 미트 롬니에겐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한 밤’이었다. 기대대로 39%의 압승을 거두며 현직 대통령이 아닌 후보로 첫 두 경선에서 모두 이긴 새 기록을 세웠고 현실적으로 후보지명 가능성 제로의 론 폴이 2위를 마크해 주었으며 ‘반 롬니’ 보수후보 등극을 노리는 릭 샌토럼과 뉴트 깅리치는 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날 밤 압승보다 더 큰 희소식은 따로 있었다. 5명의 라이벌 중 아무도 경선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초라한 성적표에도 불구, 샌토럼과 깅리치, 꼴찌인 릭 페리까지 저마다 다음 격전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승산을 장담하며 캠페인 강행을 선언했다. “분열하면 점령한다”는 롬니진영의 전략이 착착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이 난립한 금년 공화대선의 경선을 뉴욕타임스는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1월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2월 초 네바다까지가 초기인 1단계, 그 후부터 11개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3월6일의 ‘수퍼 화요일’까지가 2단계, 그때까지도 결말이 안 난다면 6월까지 끌고 갈 마지막인 3단계다.
롬니는 1단계에서 경선의 조기 마무리를 원한다. 서부의 첫 경선지인 네바다
는 롬니의 텃밭이므로 1월31일 플로리다 승리만 실현되면 경선은 사실상 끝날 수 있다. 그러려면 현재의 승리여세를 몰아 사우스캐롤라이나부터 점령해야 한다. ‘반 롬니’를 고수하는 극우보수 핵심 표밭인 남부에서 열리는 첫 경선이다. 롬니에겐 보수표밭에 대한 호소력을 평가받을 본격적 시험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롬니가 패배한다면 수퍼 화요일까지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면서 경선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롬니에게만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 아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극우보수진영에게도 롬니 독주를 막을 마지막 기회다.
유권자의 69%가 강경보수를 자처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공화경선에서 늘 화제와 논란을 낳아왔다. 1980년 이후 매번 이 지역 승자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면서 경선결과의 정확한 풍향계 기능을 자부하지만 선거전은 그야말로 생사를 건 혈투다. 비열한 흑색선전도 불사한다. 2000년 대선 경선에서 부시와 맞붙었던 존 매케인이 대표적 희생자였다. 뱅글라데시에서 입양한 딸을 “바람피워 낳은 흑인 아이”로 둔갑시킨 루머까지 ‘여론조사’라는 전화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쇄도하면서 치명타를 입혔다. 중도파 매케인을 혐오한 극우보수의 음모,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남아있다.
부시에게 무너졌던 매케인은 그러나 2008년 재도전했다. 여전히 보수진영이 거부한 중도 후보였지만 보수표밭의 분열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다. 매케인이 얻은 지지율은 33%, 두 보수 후보 마이크 허커비와 프레드 탐슨의 득표율 합계는 46%였다. 당시 보수진영이 후보단일화를 실현했더라면 ‘중도’ 매케인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보수표밭이 갈린다면 롬니는 어부지리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수표밭은 론 폴까지 가세해 산산조각으로 쪼개질 전망이다. 보수진영으로선 롬니 독주를 막을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단일후보로 전폭 지지할 ‘재목’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다.
보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롬니는 안돼”를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은 이들의 고민을 “원칙과 실용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공화당의 딜레마”로 분석했다. 부시행정부의 과다지출과 중도파 매케인 후보지명 등 공화당이 보수원칙에 충실하지 않아 백악관을 빼앗겼다고 ale는 ‘원칙우선’ 그룹은 롬니를 거부한다. 그러나 ‘실용우선’ 그룹은 1964년 극단적 보수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46개주 참패를 상기시키며 무소속 중도표밭을 잡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인기 떨어진 오바마와 불안한 경제가 공화당에게 허용한 황금기회를 잡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가 끝나면 어느 쪽으로든 극우보수진영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마지막 노력을 경주할 시간은 앞으로 열흘이다. 두 차례의 공개토론이 남았고,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어 롬니 때리기에 전력투구할 TV선전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롬니와 손잡을 수도 있다. 기록적 2연승의 기세와 여론조사 1위(롬니는 이번 주 처음으로 전국지지율 30%를 넘어섰고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에서도 선두다), 어떤 공격에도 되로 받으면 말로 받아칠 수 있는 자금력으로 완전 무장한 롬니는 이미 공화당의 전통 주류표밭과 당 지도부의 지지는 확보한 상태다. 또, 9.9%의 실업률로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유권자 상당수가 ‘경제대통령’ 롬니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뒷이야기 한 토막 : 지난 주말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취재하던 기자들 디너 모임의 화제는 무엇이었을까. 롬니가 얼마나 압승할까도, 누가 롬니의 대항마가 될 까도 아니었다. 롬니가 누구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할 까였다고 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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