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한 고등학교에 업무차 들렀다가 그 학교의 청소 담당 수퍼바이저를 만나게 됐다. 모임을 마치고 학교를 나가는 나를 문 앞에서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흑인인데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같아 보였다. 기억이 잘 안 나는 사람이었지만 일단 나도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내가 이전에 해주었던 햄버거 이야기를 아직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라면 내가 약 15년 전 쯤 한 행사에서 했던 것인데 아직도 기억한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기도 했다.
햄버거 이야기는 훼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청소하시는 분들 중에 영어가 불편한 분들을 대상으로 한 소정의 교육과정 수료식을 갖는 장소에서 인사를 하면서 했던 것이었다. 나도 그 전에 다른 곳에서 들었던 얘기로 그 당시에 적절한 내용 같아서 축하와 격려 차원에서 한 이야기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 이제 갓 이민 온 사람이 있었다. 특별한 직업이나 기술이 없었는데 다행히 건축현장에서 보조하는 일을 잡았다. 영어도 못하는 처지였다. 미국에 오기 전에 배운 말이라곤 ‘햄버거’와 ‘코크’가 전부였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콜라를 ‘코크’라고 부른다는 것은 들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점심을 싸서 다녔는데 동료들은 점심 때 햄버거를 사먹는 것이었다. 사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형편이기에 같이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햄버거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을 많이 들었던지라 한 번 사먹어 보기로 했다. 물론 코크와 같이 말이다.
햄버거를 사먹기 위해 동료들과 햄버거 가게에 가서 줄을 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주문 받는 사람이 질문을 할 것에 대비해 줄에 서서 속으로 ‘햄버거, 코크’를 계속 되풀이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해서 사먹게 된 햄버거와 코크의 맛은 정말 들었던 대로 대단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도 사먹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 같은 햄버거를 먹다보니 이제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햄버거에 아메리칸 치즈를 한 장 얹어 넣으면 치즈버거가 되는데 그 맛은 햄버거 이상이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 영어도 조금 늘어 이제는 치즈버거 주문도 할 수 있을 듯 했다.
치즈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줄에 서서 이번에는 계속 ‘치즈버거, 코크’를 연습하며 나아갔다. 주문 받는 사람이 매일 햄버거만 먹었던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치즈버거를 주문하면 잘못 알아듣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정확하게 의사전달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카운터 앞으로 점점 다가올수록 가슴이 떨렸다. 새로운 메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흥분과 새로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뒤엉켜 다가왔다.
드디어 주문 카운터에 다다랐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늘 하던 대로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물어왔다. 치즈버거, 코크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분명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목소리가 잘 안 들렸던 모양이다. 주문 받은 이가 무엇을 드시겠다고요 하고 재차 물어 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도 확 떨어졌다. 그래서, “No, hamburger, coke”라고 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그 날도 햄버거와 코크로 점심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아직도 햄버거와 코크를 사먹고 있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는 실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미숙한 영어나 익숙지 않은 주위 환경 때문에 자신이 펴고자 하는 꿈이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비애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전했던 얘기이다.
분명히 치즈버거를 주문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되었지만 주문 받는 자의 확인 질문에 주눅 들어 원하던 치즈버거 주문을 포기한 채 햄버거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가지 힘든 도전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이민생활에서 자신을 잃지 말자. 시도도 못한 채 지레 포기하지 말자.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낭비하지 말자. 각자가 처해 있는 곳에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자. 아니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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