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못한 길…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애틋한 법일 것이다. 쇼팽의 ‘이별곡’,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등은 이런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을 그린 피아노 소품들로 알려진 곡들이다. 쇼팽의 이별곡(연습곡 Op.10)은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면서 첫사랑이었던 그라드코프스카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작곡한 곡으로, 애조 띤 가락이 아름답고 슬프면서 어딘가 감상적인 곡이다. 베토벤의 ‘엘리제의 위하여’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테레제 말파티를 위하여 작곡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A단조 론도 형식으로 작곡된 이 곡은 작고도 귀여우며, 연주하기 쉬워 피아노 초보자들이나 어린이들이 즐겨치는 소품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엘리제는 과연 누구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베토벤의 영원한 애인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곤 하는데, 그 어떤 기록에도 아직 진정한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러운지도 모르지만, 엘리제가 누구였든 베토벤이 사랑했고 또 추억하고 싶었던 여인이었던 것 만은 분명한 듯 싶다.
마치 진귀한 보석인 듯, 심혈을 기울여 갈고 다듬은 듯한 이곡은 무척 기품있고 우아하다. 황녀 혹은 귀족의 뉘앙스가 풍기는데, 그 누가 연주하더라도 기품의 광채가 사라지지 않는 신비한 맛이 있는 곡이다. 마치 만인을 위한 야상곡이라고나할까, 엘리제가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곡이다. 베토벤은 여인의 고결한 사랑을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는데, 이를 주제로 오페라 ‘피델리오’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성상이 너무 이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베토벤은 결국 결혼하지 못했고 ‘엘리제를 위하여’, ‘로망스’와 같은 작품을 남기며 그 못다한 사랑을 아쉽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Fur Elise… 이 곡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나의 경우 이곡을 듣고 있으면 고추 잠자리가 연상되곤한다. 가을 서정이라고나할까, 어린시절 잠자리채를 가지고 코스모스 들판을 누비며 잠자리를 쫓던 기억이 난다. 귀엽고 경쾌하며 어딘가 순진무구한 음률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곡이 기억나는 이유는 교회에서 음악 감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생회의 음악 감상을 위해 작품을 선곡하면서 누구나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곡으로 이 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클래식소품 위주로 진행된 음악감상을 무척 시시하게 생각했고, 콧방귀를 날리며 ‘러브 스토리 주제곡’따위는 없냐며 나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혹여 버스에서 마주치면 남학생들에게 노골적인 팔장 공격을 가해오는 그런 여자애들이 내성적이거나 고결한 존재로 생각했다면, 베토벤의 착각(?)이었는지는 모르나 나에게는 무척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늘 여럿이 뭉쳐다녔으며 남학생들을 ‘형’이라고 부르며 성별의 구분을 헷갈리게 하곤했다. 교회에서 성금걷기 카드 팔기에 나서면, 버스든 어디든 닥치는 대로 강매, 실적이 없는 남학생들의 체면을 구기게 했다. 함박눈을 머리에 하얗게 쓰고, 화장실 갈 데가 없어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종종걸음을 치던 그들의 모습은 씩씩하고 현실적인 것… 산다는 것의 가슴 두근거리는, 생명력의 현장을 가르쳐 준 아이들이었다.
그 중의 한 아이는 좀 코믹하게 생긴 모습이, 그룹의 두목격으로 통쾌한(?) 귀염성이 있는 아이였다. 그 애의 언니는 피아노를 잘치는 미인이었는데 결혼하자마자 곧 남편이 결핵으로 사망한 청상 과부였다. 그녀는 남자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했고 그들의 영화같은 사랑은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누가 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집 앞을 지날 때면 늘 그 음악이 들려오곤 했다. 언니에게 배웠는지 그녀도 다른 곡은 몰라도 ‘엘리제를 위하여’ 한 곡만큼은 대가처럼 잘 치곤했다.
그 ‘엘리제를 위하여’는 어느날 교회가 분규로 갈리면서 떠나가고 말았는데, 나는 당시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절친한 친구(학생회장)에게도 그녀들에게도 배신을 때린 행위였는데, 늘 가을 코스모스 처럼… 청아했던 그들을 나는 마치 떠나야할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떠나보냈고 , 어떤 회한도 남기지 않았다. 성숙한 현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뿐, 감상이란 늘 그렇듯 혼자만의 운명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맑고도 깨끗했던 시절의, 스쳐가는 한 때의 감상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언제나 늙지 않는 가을 코스모스… 나에게는 영원한 ‘엘리제를 위하여’로 남아있기도 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