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다. 그러나 의식은 여전히 2011년에 머물러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제 막 시작 된 새 해. 그 2012년이 어딘지 무겁게 열리는 느낌이다.
“장송곡이 흐르는 가운데 TV는 핵무장한 국가에서 17년간 절대적 권력을 쥐고 기아(饑餓)로 수십 만 명을 숨지게 한 ‘경애하는 지도자’의 발자취를 더듬는 영상을 내보냈다.” AFP통신의 보도였나.
타임지의 보도대로 국가라는 극장에서 펼쳐진 그 초현실적인 장면, 마치 ‘통곡 경쟁’이라도 벌이는 양 미친 듯이 울어대는 군상(群像)들- 그 잔영이 여전히 어른거려서인가.
“북한은 별다른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시대는 순조롭게 열리고 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보도다. 그 보도의 행간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안도감이다. 불안한 소강국면이 그런대로 지속되고 있는데서 온 막연한 안도감이다.
하여튼 모든 것이 빠르다. 김정은을 유일 계승자로 선포했다.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따라 붙던 ‘경애하는 지도자’ ‘위대한 영도자’ 등의 호칭도 벌써 사용되고 있다.
또 이런 소리도 들린다. ‘탈북자들은 삼족을 멸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떨어졌다는 거다. 그리고 나온 첫 대남 성명은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갈이다. 포악성에서 아비를 능가하는 절대 권력자 김정은의 모습이 벌써부터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북한은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맞은 것인가. “북한 군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부가 더 강력한 파워집단으로 부상하면서 북한은 더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은 체제로 북한의 권력승계가 굳어진다는 것은 속단이란 이야기다.
북한의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당(黨), 군(軍), 정(政)의 세 기둥이다. 이 중 가장 막강한 조직이 군이다. 17세에서 54세에 이르는 북한의 남성인구 중 20%가 군에 속해 있다. 거기다가 핵무기관리와 미사일 판매에서 소비재구매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예산권을 가지고 있다. 그 군부의 입김이 안 먹히는 데가 없는 곳이 오늘날의 북한이다.
김정일은 2010년 9월 후계자인 김정은을 대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의 임명일 뿐 일상의 군무는 물론이고 중요 국사도 군부 지도자들이 수행하고 있다. 현 북한체제는 1인 독재가 아닌 군부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북한의 대형(大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 전문가 고든 챙의 지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벌써부터 권력교체기에 들어갔다. 그 권력교체가 공식적으로 펼쳐지는 시기는 올해 연말께다. 이후 2년간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 와중에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 중국의 군부다.
권력 장악에 필수적인 요소는 군부의 지지다. 때문에 공산당 지도자들은 저마다 군부의 환심 사기에 여념이 없다. 군부가 킹메이커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군부는 공산당 지도부의 통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외교관계 등 주요 해외정책에 대해 중국의 소장파 장교들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그 증좌다. 또 한반도문제에 있어 무조건적으로 북한을 지지해온 것도 그렇다.
“2010년 3월 천안함 공격을 앞두고 북한 당국은 공격의사를 중국 측에 알린 징후가 포착됐다. 그러나 중국은 말리지 않았다.” 한 정보소식통의 전언이다. 무엇을 말하나.
군부가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조(朝)?중(中) 두 나라 군부는 유착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심각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은 자칫 일촉즉발의 위기를 향해 달려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심지어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나라들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권력교체기를 맞는다. 이와 함께 벌써부터 제기되어온 올해 동북아의 정치기상도다.
북한의 권력승계는 김정일의 급사(急死)로 앞당겨졌다. 20대의 후계자 김정은이 군 장악의 시간표도 마련하지 못 한 채. 그 결과 막강한 파워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군부다. 그것도 ‘빅 브라더’의 강력한 후원과 함께. 불안정성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군부 집단지도체제의 북한을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없는, 근본에 있어 ‘도둑정치체제(kleptocracy)’로 보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의 말이다. 사복(私腹) 채우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것이 북한 군부 실세들의 모습이다. 그 군부의 통치체제는 또 다른 형태의 극악한 도둑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력한 독재정권 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독재체제가 붕괴될 때다. 70대의 장성들이 20대 철부지를 우상인 양 모시고 벌이고 있는 북한의 권력게임 쇼. 그 초현실적인 현상 자체가 왕조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아닐까.
2012년의 동북아기상도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계 제로’의 한 해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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