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을 만들든, 사람을 만나든, 마음을 담으세요``
▶ 스콘빵, 홀푸드 등 81개 대형업체 납품, 미국온지 22년만에 파산, 스콘으로 더 크게 일어섰다, 영어나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아 확신 있으면 부딪혀야
“영어나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대한 믿음과 확신만 있다면 부딪치는 겁니다.”
한인으로는 미국 내에서 드물게 스콘(scone•티타임에 홍차와 함께 먹는 영국의 전통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버클리 소재 스콘헨지(Sconehenge) 베이커리의 엔디 이 대표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솔즈베리평원에 있는 고대 거석기념물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스콘헨지는 캘리포니아 41개 홀푸드(whole food)와 코스트코(Costco) 등 총81개의 대형마켓에 납품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다.
요즘에는 한인들도 스콘을 알고 있지만 이 대표가 처음 시작한 1984년만 해도 생소했다.
1976년 하와이로 이민 온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제빵이 아닌 일식 요리였다. 3년간 하이얏트 호텔 일식부에서 요리를 배웠고, 79년말 하와이를 떠나 콩코드로 왔다.
“몇 년을 살아보니 하와이는 젊은 사람이 살기엔 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마침 콩코드에 베니하나 일식당이 들어서게 되면서 북가주로 오게 됐어요. 공사할 때 기왓장 얹는 것 까지 도울 정도로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그 후 샌디에고 사무라이 일식당을 거쳐, 83년 말 이스트베이로 돌아와 일식당을 개업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프랑스•이태리 식당을 버클리에서 인수해 다른 사업에 도전했다.
“일본 음식만하다가 다른 음식을 접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매일 메뉴를 바꾸니까 나중에 한계가 왔어요. 그래서 아시안 요리까지 가미한 퓨전음식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이 대표는 당시 새로운 음식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주방에서 살았다. 그렇게 14년간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에 매달려 바쁘게 생활 하던 그에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식당 근처에 사는 친구처럼 가까운 백인 고객이 영국의 스톤헨지에서 온 친구를 대접하겠다며 그의 식당에 데려온 것이다.
이 대표는 멀리서 날아온 낯선 이에게 맛과 정성이 가득담긴 음식을 내놓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라며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던가. 음식을 대접받은 그는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 대표의 식당을 다시 찾아왔다.
“자신을 제빵사라고 소개하더니 영국에서 유명한 스콘빵 만드는 법을 알려 줄 테니 배울 생각이 있냐는 거예요. 배워서 만들어 보니 빵 맛이 좋더라고요.”
이렇게 그의 ‘스콘 도전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커피숍 몇 개에만 납품할 정도로 스콘의 주문량은 매우 적었다.
이 대표는 식당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빵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월넛크릭의 프렌치 베이커리를 매입했다. 하지만 경험 부족과 텃세, 경기여파 등으로 3년 만에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그에게 몰아닥친 혹독한 시련은 빵집과 함께 14년간 운영한 분신과도 같은 식당도 문을 닫게 했다. 하와이에 첫 발을 디딘 22년 전처럼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련이 오면 기회도 온다는 말이 있다.
“버클리 몰 건물주가 내 음식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구세주처럼 나타나 월세 조금내고 가게를 하라는 거예요. 그동안 새벽에 야채 사러 다니고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좋게 봤다면서. 우직하게 일만했는데 누군가 보고 있었던 거죠. 그게 98년이에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 대표는 다시 스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혼자 배달도 하고 마케팅도 했다. 한마디로 북치고, 장구치고, 꽹가리에 피리까지 혼자 불고 다녔다.
3년간 일요일에 반나절 교회를 다닌 시간외에 새해에도 크리스마스에도 공휴일에도 일했다.
그가 미친 듯이 일한데 는 ‘돈이 없으며 몸으로 때워야한다’는 논리에서였다.
“벼랑 끝에 걸리니까 오기도 생기고, 이번 아니면 죽는다는 치열한 생각도 들었어요. 경험해 보니까 영어 잘한다고 마케팅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배웠어요. 제품이 좋은 게 최고더라고요. 내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는 대형 마켓에 찾아가 타사 제품과 자신이 만든 스콘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맛으로 평가를 받고 하나 둘씩 거래 업체를 늘려 나갔다.
베이지역에서부터 나파, 소노마, 산타쿠루즈, 리노, 레익크타호, 프레즈노까지 그의 제품이 대형업체 가판대에서 불티나게 팔리기에 이르렀다.
“처음 스콘을 가득 싣고 홀푸드로 걸어 들어가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산꼭대기에 올라간 기분이랄까. 지금도 아시안이 스콘 만드는 회사 사장이라면 놀래요. 주인은 누군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제품이 회사를 말해주니까요.”
그는 요즘 ‘낯선 나라 사람에게 식사 대접을 안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빵을 만들던 음식을 만들던 사람을 만나던 마음을 담으세요. 천연 조미료라 생각하고 성의를 넣으세요. 그것을 맛보고 경험한 사람은 따뜻한 마음이 들어간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대표는 오늘도 마음이 들어간 빵을 만들기 위해 제빵실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김판겸 기자> pk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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