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뜻 깊고 아름다운 한해였습니다. 50년 전 서울 맹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자원봉사자 여대생인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40년 전 저는 그 예쁜 여대생 누나에게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이 담긴 이름 석자, ‘석.은.옥’을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제가 아내와 함께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 온 지도 30년을 훌쩍 넘어 40년이 다 되어가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립한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은 2012년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속에서 저희 두 부부의 사랑을 듬뿍 먹으며 훌륭하게 자라난 두 아들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미 주류사회의 리더로서 각자의 분야에서 아버지인 저보다 훨씬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11년 큰아들 진석이는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안과의사로 뽑혔고, 차남인 진영이는 지난 8월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법률고문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경사에 경사가 겹친다고 10월에 진영이는 어여쁜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단둘뿐이었던 저희 부부가 올망졸망 손녀딸들과 손자를 데리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짬짬히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게다가, 요번 크리스마스에는 조카들과 조카 손주들까지 모두 모인다고 하니 어른들과, 초등학생부터 이제 막 태어난 간난 아기까지 함께 하는 아주 시끌시끌 정신없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매우 큽니다.
저는 지난해 4번이나 한국을 방문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냈습니다. 한글책 ‘원동력’이 두란노서에서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Today’s Challenges, Tomorrow’s Glory’가 출간 되었습니다. 특히나 ‘원동력’은 한국기독교출판협회에서 2011년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내도 자전적 에세이인 ‘해피라이프’를 출간하여 지난 10월에는 함께 한국을 방문해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함께 연세대학교에 강연회를 참석하느라 오래간만에 아내 팔짱을 끼고 교정을 걷게 되었는데, 예전 아내와 함께 캠퍼스 커플이라도 된 양 신이 나서 교정을 누비고 다니던 그때가 생각이 나서 둘이 한참을 웃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내셨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지금의 이 자리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당시 중학생이라면 꿈도 못 꿨을 예쁜 누나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었고, 실명으로 인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책도 쓸 수 있었고,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들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아름다운 인연들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아 봉사를 결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강연들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눈을 잃고, 저는 한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늘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 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여러번 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 할 시간도 허락받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영우 박사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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