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브 말러 열풍 ②새해 10개 교향곡 연주
구스타브 말러 / 브루노 발터 / 레너드 번스타인 / 노먼 레브레히트 / 구스타보 두다멜
교향곡 형식파괴‘포스트모던’
지휘자에 연주의 자유 허용
발터·번스타인 등 음반으로
“교향곡이란 세계와 같으며 우주를 담아야 한다”고 말했던 구스타브 말러는 하나 같이 길고 복잡한 9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하지만 그 안에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누구에게나‘나를 위한 음악’으로 다가오는 것이 말러의 특징이다. 100명이 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음악에서도 말러의 표현은 은밀하고 개인적이며, 수천명이 운집한 연주회장에서도 말러가 연주되면 나는 언제나 혼자다.
말러는 하이든이 정립한 고전형식을 파괴하고 교향곡이라는 형식을 극한으로 확장했다. 교향곡 3번은 연주시간의 극한을, 6번에서는 우울함의 극한을, 8번은 규모의 극한을, 그리고 9번에서는 고요함의 극한을 시험했다.
또 사람의 목소리 좋아해 가곡들을 쓰고 심포니에도 성악을 많이 사용했는데 노래 가사도 민요로부터 니체, 괴테, 중국 문학, 중세 가톨릭의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했다.
말러는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들에게 ‘유연한 자세, 무한한 자유’를 허용했다. 홀의 음향이나 순간의 기분에 따라 고쳐서 연주해도 된다고 허용한 최초의 작곡가로서, 악보에 메트로놈 표시를 빼놓지 않았던 베토벤과 브람스와 달리 시간과 호흡을 재는 일은 오로지 지휘자에게 맡겼다.
따라서 말러 교향곡은 지휘자에 따라 연주시간이 10분 정도 차이가 나는 건 예사고, 분위기도 밤과 낮처럼 달라진다. 놀랍도록 포스트 모던한 가변성 덕분에 말러 공연은 매번 일종의 초연과도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생애
말러의 교향곡들을 이해하려면 그의 생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심포니 1번부터 10번까지 연대순으로 그의 삶과 사랑, 분노와 저항, 절망과 고뇌,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영혼의 소리가 절절히 스며 있기 때문이다.
말러는 1860년 보헤미아의 칼리스테(당시 오스트리아, 현재 체코)에서 14명의 형제(생존한 형제는 6명) 중 둘째로 태어났다.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15세에 비엔나 음악원에 입학, 피아노, 화성악, 작곡을 공부했으며 비엔나 대학교에서 역사, 철학, 음악을 공부하며 안톤 브루크너의 강의를 들었다.
20세의 나이로 지휘자의 길에 나선 말러는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 점차 더 큰 극장으로 옮겼고 비엔나, 프라하, 라이프치히, 부다페스트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일하며 경력을 쌓던 중 1887년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한 것이 격찬을 받으며 일약 명성을 얻게 됐다.
이어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에서 6년 일한 후 37세에 비엔나 궁정 오페라극장(현재의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초청받는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10년 동안 그는 비엔나 오페라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며 다양한 레퍼터리와 무대장치의 변화 등 오페라 공연의 예술적 수준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오랫동안 수행한 브루노 발터(1876~1962)는 저서 ‘구스타프 말러’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말러가 지휘봉을 잡으면 오케스트라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의 요구에 따라 움직였고 빈 시민들은 그에게 열광했다고 회상한다. 집중력이 무섭게 강한 말러는 충동적이고 말투도 퉁명스러웠으나 신랄한 재담으로 정수를 찌르곤 했으며 특히 인재발굴의 명수였다고 한다.
1902년 말러는 19세 연하의 알마 쉰들러(1879~1964)와 결혼, 두 딸을 두었는데 첫 딸은 5세 때 성홍열로 숨졌고, 둘째 딸 안나(1904~1988)는 나중에 조각가가 되었다. 말러는 첫 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상처를 입었으며 바로 그 즈음 자신도 심각한 심장병에 걸려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지극히 사랑했던 알마의 남성편력으로 인한 고통, 예술에 대한 말러의 비타협적 성격 때문에 오페라극장 내 반대파들의 공격이 심해지자 그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말러는 이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에서 1908년 한 시즌 지휘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누렸고, 이어 뉴욕 필의 지휘자로 초청돼 1911년 초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도착한지 한 달도 안 돼 혈액감염병에 걸려 귀국하고 그해 5월 비엔나에서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음반
말러와 오랜 친분을 나눴고 말러 음악을 그의 지휘로 직접 들었던 브루노 발터의 것이 가장 오리지널 연주에 근접한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 강건한 뉴욕 필의 연주가 돋보이는 번스타인 사이클이 유명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게오르크 솔티, 에사 페카 살로넨, 발레리 게르기예프,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샤이의 연주가 사랑받고 있다.
2,000여종이 넘게 나와 있는 말러 음반을 세밀하고도 신랄하게 비평한 노먼 레브레히트(‘왜 말러인가’의 저자)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2009년 10월 LA 필하모닉 취임 콘서트에서 연주한 말러 1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두다멜의 해설은 역동적이며 그 리듬은 대단히 정확하다. 피날레 악장에서의 폭발을 향해 점증해 가는 속도감은 대단히 짜릿하다. 여기에 제동을 거는 장송행진 악장은 놀랄 정도로 말러의 표현 양식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극도로 세밀한 뉘앙스의 부재 정도가 되겠는데, 이는 지휘자의 성숙과 함께 따라올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두다멜의 연주는 우리에게 개념의 쇄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레브레히트는 이번 말러 프로젝트에 초청돼 3번, 5번, 6번 교향곡의 프리콘서트 해설을 맡는다.
■ 말러 프로젝트 연주일정
말러 프로젝트 연주 일정은 교향곡 번호 순서대로가 아니다. 4번을 가장 먼저 연주하고 두 번째로 1번과 10번을 한 다음 2, 3, 4, 5, 6, 7번에 이어 9번을 하고 나서 마지막에 8번으로 전곡 연주를 마친다. LA 필하모닉이 1, 4, 6, 9, 10번을, 시몬 볼리바 오케스트라는 2, 3, 5, 7번을 연주하며 두 오케스트라가 8번을 함께 연주한다.
▲교향곡 1번(1월19일과 20일 오후 8시·21일 오후 2시): ‘거인’이란 부제가 붙은, 엄숙함과 흥겨움이 묘하게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 한 영웅의 인생과 슬픔, 투쟁과 좌절을 그리면서 어린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송곡을 통해 죽음 한가운데 존재하는 운명적 삶을 묘사한다.
▲교향곡 2번(1월22일 오후 7시30분): ‘부활’이란 부제가 붙은, 합창단과 독창자를 처음 사용한 교향곡이다. 많은 유명 지휘자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파워풀한 작품으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묻게 하고 삶과 죽음을 명상케 하며 영원에의 강렬한 소망을 그린 곡이다.
▲교향곡 3번(1월24일 오후 8시): 말러의 전원교향곡, 대자연의 소리를 담은 곡이다. 생태계를 찬양하는 지구의 노래이고, 이상향에 대한 말러의 갈망을 담은 곡이다. 6개 악장, 100분에 달하는 긴 연주시간으로 유명하며 말러 작품 중 녹음빈도가 가장 낮은 곡이다.
▲교향곡 4번(1월13일과 14일 오후 8시·15일 오후 2시):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짧고 스윗하며 고전적인 모양새를 갖춘 작품. 말러는 소년으로 돌아가 천국을 본 아이의 비전을 노래한다. 이 공연에서 가곡 ‘방랑자의 노래’(Songs of a Wayfarer)도 함께 연주된다.
▲교향곡 5번(1월26일 오후 8시): 말러가 아내 알마를 위해 쓴 가장 부드럽고 찬연히 빛나는 사랑의 교향곡. 애절한 슬픔의 바다에서 유영하는 듯한 아다지에토 악장, 영화 ‘베니스의 죽음’으로 영원히 각인된 4악장이 유명하다. 사랑과 죽음이 뒤섞인 고독의 음악이다.
▲교향곡 6번(1월27일과 28일 오후 8시·29일 오후 2시): ‘비극적’(Tragic)이란 부제가 붙은 곡. 육중한 해머가 두드리는 소리로 코앞에 닥친 세계대전을 경고하며 모든 존재의 파멸과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어두운 작품이다.
▲교향곡 7번(1월31일 오후 8시): 난해한 작품으로 여겨져 자주 연주되지 않으나 현대 작곡가들에게는 교범과도 같은 곡이다. ‘밤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7번에 대해 두다멜은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음악, 우주적인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감정이 충만한 교향곡”이라고 말했다.
▲교향곡 8번(2월4일 오후 8시 슈라인 오디토리엄): 1910년 뮌헨 초연 당시 1,000여명이 참가, ‘천인 교향곡’이라는 타이틀로 불리게 됐다. 말러 자신이 최고작으로 평가한 대작으로, 2부에 걸쳐 인간의 타락과 구원, 상스러움과 속됨을 대비시키면서 창조적 영혼과 에로스를 결합하려 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LA 필하모닉과 시몬 볼리바 심포니, 그리고 수백명의 합창단 등 1,000여명이 출연한다.
▲교향곡 9번(2월2일과 3일 오후 8시·5일 오후 2시): “말러가 세상에 보내는 평화로운 작별인사”(브루노 발터)라는 해석과 “희망과 절망을 저울질하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무승부라는 결론을 내렸다”(레브레히트)의 해석이 대조를 이루는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미완성 교향곡 10번(1번과 같은 날 연주): 말러는 1악장만 관현악 총보를 남겼고, 상당 부분의 멜로디 초안을 작곡해 놓았지만 오스트레이션이 돼 있지 않았다. 그의 사후 여러 작곡가들이 10번을 완성코자 노력했으나 말러 해석에 뛰어난 지휘자들인 발터, 번스타인, 솔티 등은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10번의 지휘를 거절했다. 후 데릭 쿡이 알마 말러의 적극적인 양해를 얻어 10번을 완성, 여러 지휘자들이 이 곡을 지휘했지만 번스타인은 그마저도 거절했다. 서울시향은 작년 10월 쿡의 완성본으로 교향곡 10번을 한국 최초로 연주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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